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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7-코로나 시대의 사랑

몽상가 소설 [파렴치한 연애] 7화

by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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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7



여자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5일 동안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여자의 아들과 남편 모두 확진으로 결과가 나왔다. 외부와 단절된 채 집안에서 5일을 지내면서 아들과 남편에게 드는 죄책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남자에게 온통 마음을 뺏겨 집에 소홀했던 기간이 길었다. 엄마가 집안일을 도와주셨기 때문에 일 핑계로 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세미나를 명분으로 외박을 할 때도 남자에게 향하는 감정이 우선이어서 아들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여자는 아들과 남편에게 소홀했던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는 듯 몸을 쉬지 않고 놀렸다. 아들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했고 매일 새로운 메뉴를 상에 올리며 오랜만에 세 식구가 붙어있는 생활을 했다. 특히 호주 유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로컬 어학센터 6개월 과정을 거쳐 호주 고등학교에 입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남동생이 호주에 살고 있어서 결정한 일이기도 하지만 호주 여행을 다녀온 뒤에 아들이 유학 가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비춰왔다. 호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사촌들이 한국과는 다른 교육구조 속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진학 전에 가야 호주 학업 방식을 익히면서 11학년을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남동생이 꼼꼼하게 현지 교육 정보를 보내왔고 조카들이 다니는 학교에 같이 다닐 거라 걱정은 덜었지만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세 식구가 오랜만에 긴 시간을 같이 보냈다. 주로 아들 유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의논했다. 아들은 한사코 혼자 가겠다고 우겼지만 어학연수 기간인 6개월은 여자도 같이 있다 오기로 했다. 여자도 로컬 어학원을 등록하거나 다른 강좌를 들을 수도 있겠고... 여자는 머릿속에 남자 생각이 가득하다. 남자에게는 아직 말하지 못했다. 6개월을 떨어져 지내야 한다면 남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자는 가족들과 애틋한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남자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남자가 혼자서 앓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걱정이 되고 신경이 쓰였다. 집에 같이 있는 아들과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혼자 있는 남자에게도 미안하고 두 갈래의 마음이 춤을 추는 통에 여자는 현기증이 일었다.


지랄 맞은 코로나.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여자와 남자가 이렇게 깊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남자가 태국으로 출장을 가지 못하게 되어 한국 본사에서 장기 근무를 하게 되었으니 여자와 만날 기회가 많아졌고 세상에 퍼진 바이러스로 인해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사람들 덕분에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마스크까지 썼으니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코로나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을 부추겼고 여자와 남자는 기꺼이 따랐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여자와 남자는 사랑의 감정이 최고조에 올랐다.


여자는 격리가 풀리자마자 남자에게 달려갔다. 여자는 남자가 이사한 집이 마음에 들었다. 베란다에서 계절에 따라 바뀌는 꽃과 나무를 볼 수 있었고 달빛이 잘 들어오는 위치에 있었다. 이사한 첫날 작성한 '연인 서약서' 덕분에 서약을 깨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원하는 한 가지, 여자는 남자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기', 남자는 여자에게 '자주 연락하기'를 이행하면서 다시는 결별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욕구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시기여서 싸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만남의 횟수가 늘었다.


그러나 감정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미세하게 느끼고 있었다. 남자에게 향하는 감정은 여전히 깊은데 결이 다르다고 할까? 이전과는 다른 감정의 결은 신뢰가 박살 난 자리에 들어선 포기였다. 남자가 절대 변하지 않을 본성적인 부분은 인정하고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사랑하는 감정은 그대로였다.

남자는 항상 물었다.


"나를 왜 좋아해요?"


여자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감정 때문에요. 감정이 제일 중요해요."


오랜만에 만난 남자는 살이 더 빠졌다. 5일간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장을 봐서 저녁 준비를 하기에는 시간이 늦을 것 같아 외식을 하기로 했다. 여자가 나가려고 현관으로 몸을 돌리는데 남자가 여자를 뒤에서 안았다.

" 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남편과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이 밉다가, 보고 싶었다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여자는 몸을 뒤로 돌려 남자를 안으며 말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당신만 생각했어요."


남자의 눈은 여자를 잡아먹을 기세로 이글거렸다. 격렬한 입맞춤의 반동으로 여자가 뒤로 밀려났고 여자의 가슴을 움켜쥔 남자의 손은 거칠게 옷을 벗겼다. 남자는 굶주린 맹수처럼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가슴을 난폭하게 깨물고 목과 어깨에 사정없이 입을 맞췄다. 여자의 허벅지와 다리를 지나 깊숙한 곳까지 애무를 했다. 여자는 달뜬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고 남자 위에 올라탔다. 뜨거운 불길이 여자와 남자를 둘러싸고 타올랐다. 여자와 남자는 동시에 절정에 이르렀다.


태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가 밀려왔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만 들린다. 여자의 몸은 멍투성이다.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지나간 흔적... 양쪽 젖꼭지 위에 거멓게 번진 멍... 허벅지와 엉덩이에 핀 멍꽃... 여자는 남자가 일부러 자국을 남긴 것을 안다. 자신의 여자라는 증표, 사랑의 흔적을 가진 몸을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게 만들려는 영역표시...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오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섹스로 나타난다는 남자, 코로나를 혼자 앓고 난 후에 비슷한 욕구에 휩싸였을 가능성... 여자가 섹스리스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남자의 발악...


여자는 남편과 섹스리스였다. 출산 후에 몸에 문제가 생겨 여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그 이후 섹스리스로 살아왔는데 남자를 만나고 상실했다고 믿었던 몸의 기능이 살아났다. 신비한 일이었다. 남자와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남자 역시 여자와는 안 되는 것이 없었다. 결론은 서로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태풍이 한바탕 훑고 지나가 격정이 사그라드는 시간, 여자는 땀에 젖은 몸과 숨을 고르는 소리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열락의 무아경... 남자이기에 가능한 기쁨... 완벽했다. 몸에는 빨갛고 푸른 멍이 들었다. 남자가 일부러 여자의 몸에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는 것을 알고 있다. 여자는 그렇게라도 자신의 여자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남자가 아닌 누구와도 살을 섞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어떤 날은 오히려 여자가 남자에게 몸에 흔적을 남겨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오직 남자에게만 속한 몸이다, 멍투성이의 몸을 누구에게 보이겠나, 여자에게는 남자뿐이다. 남자만 여자의 몸을 가질 수 있다고 남자를 안심시키는 여자의 사랑방식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눈을 바라봤다. 좀 전의 맹수와도 같은 핏발 선 눈은 사라지고 유순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여자는 남자의 부드러운 눈빛과 야수처럼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눈빛 둘 다 좋아한다.


"당신, 흥분하면 잡아먹을 듯이 나를 보는 거 알아요?"


"제가 그랬어요?"


"이상하게 그 눈빛을 보면 저도 흥분돼요."


"당신 하고는 같이 즐긴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우리 점점 음란해지는 거 같지 않아요? "


"섹스는 음란할수록 재미있는 거 아닌가?."


땀에 젖은 서로의 몸을 깊게 안았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맞춤이 격정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자 여자가 몸을 뺐다. 5일간 끼니를 챙기지 못해 살이 내린 남자를 위해 단백질 보충이 필요했다. 여자를 다시 안으려는 남자를 피해 옷을 입으며 여자가 말했다.


"자기야,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여자와 남자는 언제인가부터 자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때 식당에 가지 않았다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XY7



남자는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5일간 혼자 집안에 갇혀 살았다. 쓸데없는 상상과 몽상이 남자를 엄습했다. 자신은 혼자 바이러스와 집안에 갇혀있는데 여자는 가족들과 희희낙락하고 있는 게 그려졌다. 여자 특유의 웃음이 떠올랐고 이내 사람 가슴 녹이는 웃음을 지으며 남편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입 맞추고 껴안고 있을 여자에게 화가 났다가 남편과 몸을 섞으며 신열에 뜬 신음을 지르는 여자가 보이는 순간 분노가 주체 없이 터졌다. 벌떡 일어나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분에 차서 식탁을 내리쳤다.


여자의 적극적인 몸놀림을 아는 남자의 머릿속은 여자의 유연한 동작이 펼쳐졌다. 남편과 섹스리스라는 여자의 말은 믿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에게 성욕이 강하다고 하지만 여자 역시 성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여자처럼 적극적으로 사랑의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상대에게 같이 즐기는 느낌을 주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푹 빠진 이유 중에 하나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섹스의 즐거움과 합일의 만족감을 여자와는 나눌 수 있었다. 그것도 거의 매번. 그런 여자가 어떻게 섹스리스일 수 있는가? 남자를 달래기 위한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게 매력적인 여자를 옆에 두고 덤비지 않는 남편은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자는 여자가 남편 앞에서 옷을 벗지 못하게 사랑의 흔적을 남겼다. 어느 날은 멍자국이 심해서 학대받는 여자의 몸처럼 보였다. 여자는 멍투성이인 몸을 남자에게 보이면서 남자의 흔적이라서, 사랑의 흔적이라서 좋다고 했다. 남자는 더 세게 물고 빨았다. 광폭한 섹스의 끝에 여자의 몸은 멍투성이가 되었지만 여자는 그것 역시 즐겼다. 멍투성이인 여자의 몸을 보면 안심이 되었다. 내 여자라는 증표가 그것밖에 없었다.


해열제를 먹고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남편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열에 뜬 상태로 차를 몰았다. 무작정 여자의 집으로 향했다. 남자의 귀에는 여자의 웃음소리와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를 데려다줄 때 항상 내려주는 곳에 주차를 하고 여자에게 나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여자는 바로 나왔다. 여자가 차에 타자마자 여자를 안고 입을 맞췄다. 내 여자야, 당신은 내 여자야, 놓지 않을 거야.


남자는 자가격리 기간이 풀렸지만 하루 더 쉬었다. 여자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여자를 보자 들끓던 상념과 미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저 여자를 안았다.


오랜만에 만난 남자와 여자는 외식을 했다. 메뉴는 삼겹살. 남자를 본 여자가 살이 더 빠졌다면서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선택한 메뉴였다. 맥주에 소주 한잔을 섞어 만든 소맥을 부딪쳤다. 남자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여자의 웃는 얼굴과 웃음소리 속에서 건배를 했다.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평범한 일상을 여자와 평생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남자는 여자를 만나 좋으면서도 집으로 돌아갈 여자를 생각하니 벌써 서운해졌다. 마음을 숨기고 소맥을 마셨다. 그 모습을 본 여자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당신처럼 맥주를 맛있게 먹는 사람은 못 봤어요. 목울대로 굴떡굴떡 넘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맥주가 마시고 싶어 진다니까요. 그리고 맥주가 넘어갈 때 당신 목젖은 얼마나 섹시한데요. 당신 그거 모르죠?"


"에이, 무슨... 목젖이... 오죽 칭찬할 게 없으면 목젖을 가지고."


"아닌데... 진짜 섹시한데... 우리 자기는 자기가 섹시한 줄 모르나 봐요?"


"아이코,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당신이 눈에 콩깍지가 껴서 그런 거죠."


"내 눈에는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예요."


'제발 콩깍지가 안 벗겨졌으면 좋겠네요, "


남자는 여자의 달콤한 말과 웃음에 취했다.


"참, 그날밤에 별일 없었어요?'


"언제?"


"내가 집 앞으로 찾아간 날, 당신이 밤늦게 나왔다 들어갔는데 괜찮았어요?"


"무슨 소리예요. 언제 당신이 왔다는 거예요?"


"며칠 전에...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었는데도 열이 안 내린 날이 있었어요. 그날... 당신에게... 아, 꿈인가?"

"열에 떠서 꿈을 꿨나 보네요. 우리 자기, 혼자 고생했어요."


남자는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날의 장면들이 꿈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그렇게 무턱대고 찾아왔다면 기뻤을 거예요. 제가 돈키호테 좋아하는 거 아시죠? 자기 여자를 위해서 목숨 바쳐 싸우는 맹목적인 사랑과 행동하는 사람, 저는 그런 돈키호테를 원하지만 당신은 행동하지 않죠. 그러려고 했는데... 하고 싶었는데... 생각으로만 그치고 행동하지 못하는 기질이잖아요. 제가 늘 당신에게 원하는 게 행동이에요. 만약 당신이 며칠 전에 진짜로 나를 찾아왔다면 당신에게 닫힌 신뢰의 문이 열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해서요."


'당신도 당신을 잘 알잖아요. 그럴 수 없는 사람인 거... 당신이 아무 계산이나 재는 거 없이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갔을 거예요."


"이 세상에 나처럼 당신에게 눈이 멀고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사랑이 있을까요?


"당신이? 처음부터 나를 속이고 다른 사람과 여지를 남겨둔 채로 나를 사랑한 거? 그게 무슨 맹목이에요? 언제든 등을 돌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요?"


"옛날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김 선생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고 사과를 했어요.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지난번 이사한 날, 우리가 헤어졌다가 극적으로 다시 만났어요. 다시는 싸우거나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 '연인서약서'도 쓰고 앞으로 각자의 입장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야기했어요. 당신은 김 선생과' 연락은 할 것 같습니다'라고 입장을 내놨고 저 역시 받아들였어요."


"저는 당신을 다시 만난 이후로 김 선생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는데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분명히 연락을 하고 지내겠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저 사람은 언제든 갈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당신에게 가지 못하니 당신도 그런 입장일 수밖에 없을 거라 이해했지만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겠죠."


"김 선생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연락을 한다고 말을 했다는 거예요?


"실제로 당신이 연락을 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당신이 '연인서약서'를 쓰던 그날 서로 앞으로의 입장을 정확히 밝히고 넘어가자는 제 말에 김 선생과는 '연락을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김 선생 때문에 우리가 숱하게 싸웠고 사실은 김 선생이 아니라 김 선생을 부정하는 당신의 태도 때문에 당신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었던 건데 오히려 솔직하게 연락하고 지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김 선생을 부정하지 않는 당신의 태도가 이전보다는 나아 보였어요. 분명히 당신이 보인 태도는 이전과 다르지만 맹목은 아니죠. 맹목적인 사랑은 말 그대로 맹목이어여 해요."


"그래서 당신은 맹목입니까? 나를 사랑한다면서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게 당신이 말하는 맹목적인 사랑인가요?"


'저는 당신을 만나기 전에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에 얽힌 관계들에 책임이 있어요. 그런데도 당신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당신이 원하는 한 가지를 들어주지 못하는 게 가장 가슴 아팠어요."


"그러니까요. 한 번뿐인 인생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해야지, 왜 못하는데요?"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이 가정을 깨고 사랑을 택할 때는 맹목적인 사랑이 우선되겠지요? 안나카레니나가 가정을 버리고 브론스키에게 갈 때는 서로가 맹목적인 사랑일 때 가능한 거였어요. 당신은 처음부터 김 선생을 숨기고 저를 만났고 한때 미래를 약속했던 사람조차 사랑한 적이 없다고 부정하면서 연락을 취하며 여지를 남겼어요. 그게 맹목인가요? 그런 사람에게 갈 수 있나요?"


"당신은 나를 비난하는데 당신 입장은 생각 안 합니까? 내가 왜 그랬을까요? 당신과 부부가 돼서 떳떳하게 사람들 앞에 서고 싶어요. 숨어서 만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내 여자라고 자랑하고 싶다고요.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안 온다고, 설사 남편과 헤어지게 되더라고 나에게는 오지 않겠다고까지 했어요."


'제가 그 말을 왜 하게 되었는지는 잊었어요? 당신에게 간다고 했잖아요. 아들이 성인이 되고 자리를 잡게 되는 시점인 10 년 뒤에 당신에게 가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당신이 3일 만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뒤집어 버렸어요. 이것저것 계산해 본 결과겠죠.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없고, 다른 여지로 남겨둔 김 선생마저도 놓치게 될까 두려웠을 거예요. 그런 계산 속과 약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맹목이라니요?"


"당신은 당신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저만 비난하는군요. 당신과 부부로 살고 싶어요. 이생에서 당신과 같은 여자는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알아요. 그런 당신과 함께 살고 싶다고요. 당신만 나에게 온다는 보장만 있으면 왜 다른 여지를 남겨두겠어요?"


'당신에게 간다고 했잖아요"


"10년 뒤예요? 또 똑같은 이야기 반복이네요. 그만합시다. 어차피 오지 않을 거면서... 나에 대한 비난은 잠시 멈추시고 자신을 돌아보세요."


"네, 돌아봐도 후회 없이 당신을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 사랑했어요. 그러니 10년 뒤에 당신에게 가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었던 거고요.


"당신이 나를 정말 사랑했을까?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세요. 당신에게 부족한 결핍을 나에게서 찾은 건 아닌지... 정말 사랑한다면 와야죠. 나한테..."


테이블 위에는 5개의 빈 맥주병과 2병의 소주병이 놓였다. 남자가 소주를 한병 더 시켰다. 맥주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 마셨다. 남자는 원래 생소주는 안 마신다.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거나 평소에는 맥주를 즐겨마셨다. 여자의 비난에 마음이 상한 남자는 소주를 단번에 마셨다. 쓴 목이 올라왔다. 여자도 자신의 맥주잔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남자는 자신들의 대화가 옆자리 사람들에게도 들렸을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부부처럼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나누는 대화는 말 그대로 불륜의 현장이었으니까 말이다.


여자가 또 맥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있었다. 남자는 불안하다. 여자가 술에 취하면 어떤 비난의 말이 쏟아질지 모른다.


"나에게 무슨 결핍이 있는데요? 내가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당신을 만난다고 했어요 지금?"


여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남자는 여자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말했다.


'네 ,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한다면 나에게 와야죠. 당신은 그저 나를 이용하는 거예요."


"이용? 지금 이용이라고 했어요? 나쁜 새끼..."


남자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대화의 내용이 그들이 귀에 닿는 것도 수치스러웠다. 그들에게는 그저 불륜으로 보일 뿐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더 이상 말을 하면 나가겠다고 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여자는 막무가내로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소주를 따르는 여자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남자에게 여자는 기어이 말을 했다.


"이용은 이용 가치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당신에게 어떤 이용 가치가 있어요? 참, 웃겨... 이용했다고? 내가? 당신을? 미친 거 아니에요?


"더 이야기하면 저 여기서 나갑니다. 그만하세요."


'그만하자고? 먼저 시작해 놓고 그만하자고요. 당신을 내가 이용했다면서요? 뭘 이용했어요? 내가 도무지 알 수없어서요. 뭘 이용했어요?"


"분명히 경고했어요. 먼저 갑니다."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남자는 식당을 나와 밖에서 담배를 태웠다. 여자는 맥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있었다. 담배 3 대를 피우면서 유리문으로 보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올라오는 취기에 다리를 허청거렸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혼자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당에 가기 전까지 좋았던 시간이 꿈같았다.


여기서 사랑을 나누던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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