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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8-칼로 가슴을 찌르다

몽상가 소설 [파렴치한 연애] 8화

by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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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8


코로나19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이상 변이 바이러스가 득세하고 전 세계 사망자 수가 최고수치를 보였던 초기 1년과 2년을 지나 3년째 접어들자 코로나는 일반 감기와 똑같아졌다.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고 바이러스가 떠다니지만 코로나는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정점을 찍었던 코로나 시대의 사랑도 끝났다. 남자가 내뱉은 말이 끝을 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한다면 나에게 와야죠. 당신은 그저 나를 '이용'하는 거예요."


남자는 이 말을 하더니 여자를 혼자 남겨두고 식당을 나갔다. 여자는 혼자 남아 소주를 다 비웠다.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억지로 붙잡고 앉아서 남자가 한 말을 되짚어봤다.


"당신이 나를 정말 사랑했을까?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세요. 당신에게 부족한 결핍을 나에게서 찾은 건 아닌지... 정말 사랑한다면 와야죠. 나한테..."


여자와 남자의 대화를 엿들은 옆 테이블 손님들과 직원들은 혼자 남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여자를 힐끔거리며 보고 있다.


'나쁜 새끼... 내가 이용했다고? 이용이라는 단어를 감히 나에게 쓰다니... 미친놈'


여자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비틀거리면서 일어서는 여자를 사람들이 대놓고 쳐다본다. 아니 구경한다. 여자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왈칵 서글픔이 올라왔다.


'나쁜 새끼... 나쁜 새끼....'


여자는 눈물이 쏟아졌다. 최선을 다해 남자를 사랑한 시간이 무참하게 짓이겨졌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물러나는 3년 동안의 시간이 '이용'이라는 단어 하나로 박살 나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여자가 최대한 바로 걸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다리는 제멋대로 휘청거렸다.


식당 밖으로 나온 여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여기가 어디인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속절없이 왜? 왜? 왜? 왜?를 되뇌는 자신의 목소리만 들렸다. 속이 뒤집어졌다. 사람들이 없는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 게워냈다.


으웩.... 나쁜 새끼... 윽.... 이용했다고? 내가?... 감히 나한테... 나쁜 새끼...


여자는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울음이 터졌다. 여자의 사랑이 끝났다. 그렇게 사랑했던 남자였는데 이 모든 것이 꿈인가? 누구보다 여자의 사랑을 알고 있는 남자의 입에서 이용당했다는 말이 나왔다.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자는 남자에게 말했었다.


"당신이 나중에 다른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그때 내가 당신에게 가기 위해서 어떻게 시간을 만들었는지,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게 낸 시간인지 알게 될 거예요."


여자가 몇 번에 걸쳐 이런 말을 했지만 남자는 흘려들었다.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어렵게 시간을 내고 그 시간을 내기 위해 감수해야 할 여자의 현실적 상황에는 안중에 없으니까. 여자는 남자와 함께 하기 위해 시간을 낸 이전과 이후에 감당할 현실적 무게에 늘 쫓기며 살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남자에게로 향하는 감정이 여자에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들과 남편보다 남자가 최우선이었던 날들이었다. 그간의 시간이 부정당하고 사랑이 모욕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여자의 흐느낌은 이제 통곡으로 변해갔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나쁜 새끼... 이용이라고 말했어? 감히? 나한테? 어떻게 이용했다는 말을 할 수가 있냐고.... 흑.... 윽... 악..."


얼마나 울어댔는지 술이 깨기 시작했다. 여자의 앞에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자를 부축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이 걱정이 되어 가지 못하고 지켜보다가 나타난 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자는 집에 돌아갔다가 여자의 카톡 공세에 다시 나온 거였다.


여자와 남자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여자가 이사기념으로 사준 식탁이다. 하얀색의 식탁은 고급스러운 빛을 머금었다. 여자와 남자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었던 식탁이 지옥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여자의 눈은 살의로 번득였다


"내가 뭘 이용했어요? 나는 사랑을 배신한 이 말 때문에 당신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아, 그래요? 가슴을 기꺼이 내줄 테니 죽이세요."


남자는 싱크대 서랍에 있는 칼을 덜그럭 거리며 찾아와 식탁 위에 놓았다.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칼은 무뎌서 사람을 죽일 수 없어요. 제대로 날이 서게 갈아서 가져오세요."


여자의 살기 띤 눈빛을 본 남자의 눈에 두려움이 설핏 스쳤다. 남자는 죽을 사람이 직접 칼을 가는 게 말이 되냐고 중얼거리며 칼을 살살 갈았다. 남자가 식탁 위에 칼을 올려놓고 여자 맞은편에 앉았다. 여자는 칼을 들어 날을 확인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남자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남자가 움찔하며 몸을 뒤로 제켰다가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여자는 칼날을 잡고 남자의 가슴을 겨누었다. 남자의 왼쪽 가슴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남자가 부르르 떨면서 입술을 물고 신음을 참았다. 남자의 왼쪽 가슴에서 피가 흘렀다.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칼을 찌른 상태에서 멈췄다. 이 정도로 해서는 죽지 않는다. 칼을 위로 치켜들고 내려 찌르는 것도 아니고 가슴에 칼날을 대고 지그시 누른 정도라 피가 조금 나온 게 다였다. 여자는 남자를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피를 본 남자는 겁이 난 얼굴이다.


"내가 당신을 이용한다고 했어요. 3 년 넘게 사랑한 사이인데 아무리 술기운이라도 이용했다니요? 그것도 이전에 만난 여자들을 나열하면서 연상녀도 당신을 이용했고, 김 선생도 당신을 이용했고, 나 역시도 당신을 이용했다고 했어요. 어떻게 이용했다는 거예요."


남자는 핸드폰의 녹음기를 눌렀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녹음을 하겠다고 했다. 여자는 기가 찼다. 여자가 진짜 칼로 찔러서 놀란 눈치였다. 남자의 눈에 두려움이 스몄지만 남자는 태연을 가장했다.


"녹음을 한다니 다시 물을게요? 내가 당신을 이용했어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뭘 이용했다는 거예요?"


"내가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그 가치가 뭔데요?"


"그 사람들은 나를 필요로 했으니까.."


"그 사람들은 당신이 이용가치가 있어서 뭘 필요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딴 사람들 말고... 나...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여태 만났는데 내가 당신을 이용했다면서요? 뭘 이용했어요? 어떻게?"


"난 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 말고 내가 뭘 이용했는지 말하라고요?"


"당신도 마찬가지로 내가 도와준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나를? 당신이 나를? 뭘 도와줬어요?"


"모르면 말고..."


"녹음한다면서 말해보세요. 경찰서 가서 증거로 제출하려고 지금 녹음하는 거 아니에요? 날 뭘 도와줘서 당신을 내가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용했다는 건지 말하라고요."


남자는 녹음되고 있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내가.. 이러다 시간 다 갈 텐데... 잠깐만요."


"얘기하세요. 그냥, 이거 갖고 경찰서 갑시다. 당신 좋아하는 증거 남기기 위해서 녹음하는 거니까 확실하게 말해줄게요. 우리가 사랑한 시간을 이용했다고 당신이 말하는 순간, 당신을 죽이고 싶었어요. 당신도 그러라고 해서 시도했어요. 당신이 고소하면 이게 증거가 될 거예요. 아까 진짜 당신을 칼로 찔렀어요. 그리고 말하는 이 순간에도 살인 사건이 날 거예요. 내가 뭘 이용했어요?"

.

여자는 날이 선 목소리로 식탁 위에 있던 칼을 들었다 내팽개치면서 말했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다시 칼을 집어 들어 식탁 위에 칼날을 찍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무엇을 이용했는지 말하세요. 그것 때문에 난 당신을 죽이려고 했거든요."


"흠, 웃기네."


"아니, 그거만 얘기해요. 이용했다며? 사실이라며? 어떻게, 무엇을 이용했는지 그것만 이야기하세요."


남자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용이라는 개념과 내가 생각하는 이용개념이 다른 거 같아요."


'얘기해 보세요. 그 말하기 전에 전제가 있었어요. 연상녀도, 김 선생도 다 당신을 이용했고 나도 똑같이 당신을 이용했다고 했거든요. 어떻게 이용했어요, 내가? 그럼 이용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다르다고 치고, 당신이 생각하는 이용은 뭔지 이야기해 보세요."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다. 잠깐의 고요 사이로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다시 말하지만, 난 도와준다고 생각했어요."


"뭘 도와줬어요?"


"모르면 말고..."


'몰라요. 모르니까... 당신이 뭘 도와줬어요?"


"모르면 됐어요."


"아니, 뭘 도와줬길래 당신이 내가 당신을 이용한다고 생각했는지 알아야겠어요."


남자는 힘겹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면서 말을 하지 못했다. 쓰읍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입을 열었다.


"난 당신이 가정적이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를 만났어요. 나를 만나는 이유가 뭘까? 나는 당신을 만나면 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 만났어요? 당신한테 뭔가 결핍된 게 있으니까 나를 만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이용한 게 뭔지를 말하라고요."


'당신이 부족한 걸 내가 채워줬다고... 아니야?"


"난 부족한 거 전혀 없었어요."


"당신 하고 늘 섹스한 거 그건 뭐야?"


"섹스했어요. 그런데요?'"


"섹스리스인 당신에게 그 결핍을 내가 채워준 거 아니야?"


"섹스리스였어도 결핍 못 느꼈어요. 불만 없었어요. 근데 당신 만나면서 좋았어요. 그렇지만 당신한테 했던 말도 있죠. 당신은 섹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섹스 없이도 가능한 사랑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말을 했던 거 기억해요? 나는 섹스 없이도 좋아요. 감정이 우선인 사람이니까. 당신을 만나서 느끼는 감정이 좋았어요. 처음부터 내가 섹스했어요? 당신이 처음 대시할 때도 안 된다고 밀어냈잖아요. 그런데 연인이 됐고 사랑하니까 자연스럽게 섹스를 하게 됐고 서로 맞아서 기쁨을 같이 느끼게 된 거지 그게 그 결핍을 당신한테서 채웠다고요? "


"네, 난 그렇게 생각해요."


'처음부터? 그러면 처음에 내가 왜 당신을 밀어냈어요?"


"그거야 뭐, 유부녀니까?"


"우부녀니까 당연한 거죠. 그런데 당신은 뭐라고 했어요? 내가 유부녀인 걸 몰랐다고 끝까지 그랬죠?


"몰랐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내가 당신을 이용했다는 게, 내가 섹스리스니까 당신이 그 결핍을 채워줘서 이용당했다고 말하는 거죠?"


"그렇죠. 부족한 걸 나한테서 채웠다는 거죠."


" 그거 없이도 살아요. 어찌 됐든 내가 당신을 이용한 것이 섹스네요. 그거예요? 또 없어요?"


"더 있어요."


"이야기해 보세요"


"얘기하지 않을래. 이야기하면 치사해지니까..."


"아니, 그냥 이야기하세요. 나는 당신의 그 말 때문에 당신을 죽이려고 했거든요. 당신도 죽는 이유를 알아야 하니까. 사실, 이용했다는 말 자체가 사랑하는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여태껏 당신에게 보여준 사랑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당신은 이용당했다니까 도대체 뭘 이용당했는지 나도 알아야죠. 그래야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죠. "


쓰읍... 남자가 혀 차는 소리를 여러 번 냈다.


'섹스, 내가 섹스에 미쳐서 당신을 그렇게 이용했군요. 그다음엔 또 뭐예요?"


"쓰읍... 지금... 뭐... 당신하고 나하고 오늘 끝장내자고 하는 거 같으니까..."


"내 입으로 다시 말하기 싫어요. 그러면 또 살벌해지니까... 당신이 나한테 한 말을 다시 듣는 순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내가 뭘 이용했는지 이야기할 의무가 있잖아요. 그래야 죽어도 왜 죽는지 알고 나도 죽일 이유가 있어야 되잖아."


"허헛, 나는 내가 죽을 이유가 있는 줄 알았어요. 당신이 말하는 그 이유가 내가 죽을 이유가 아닌 거 같아."


"아니 죽을 이유예요. 어떻게 이용당했다는 말을 할 수 있어? 이용당했다고? "


"당신 하고 이제 끝난 거 같으니까 이제 내가 이야기할게요. 사진동호회에서 만난 연상녀는 전시 사진을 다 내가 찍어줬어요. 김 선생은 내 경제력을 이용했어요."


"그래서요?"


"그게 나의 이용가치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랬고 나는 뭔데요?"


당신도 나를...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당신이 나랑 그만두려고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한 이야기예요.


"아니, 이용당했다고 당신이... 그 말을... 했어요."


"그 말이 나온 이유가 당신이 나를 그만 만나려고 했던... 오늘도..."


"당신이 먼저 한 말이잖아. 당신이 말 시작해서..."


"내 논리는 그겁니다. 당신은 호주에 가기 전에 나랑 끝내려고 했던 건데..."


"그런 적 한 번도 없고요. 당신 혼자 생각하는 거고요. 지금 요점은 그게 아니에요. 내가 당신을 이용했다고 했어요.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돼요."


"맞아요. 맞아요."


"첫 번째가 섹스고 두 번째가 뭐예요?"


"당신이 나랑 그만두려고... 그것 때문에 나온 이야기예요. 오늘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니까요."


"나는 그런 생각도 그런 말도 한 적이 없어요. 당신 혼자 생각하고 혼자 말한 거지. 당신이 지금은 내가 당신을 이용했다고 했으니까 뭘 이용했는지만 말해요."


"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왜 그런 이야기했냐고? 아, 이상하네 이 사람이..."


"내가 다시 물어봤을 때도 내가 당신을 이용했다고, 지금도 물어봤을 때 사실이라고 했잖아."


"맞잖아, 맞잖아..."


"그러니까, 난 모르니까 얘기를 하라고요."


"당신이 나랑 헤어질 기회를 보다가 말꼬리 잡아서 나랑 끝내려고 하는 거 보고 당신도 나를 이용한다는 말이 나온 거예요."


남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여 녹음기에 입을 바짝 대고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이거 녹음되니까 이야기할게요. 당신은 나랑 끝까지 갈 생각 없잖아요?"


"아니요. 전혀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무슨 소리야,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당신은 늘 남편을 존경하고 가정을 깰 생각이 없다고..."


"이 가정은 포기하지 않지만 당신과의 사랑은 계속하고 싶었죠."


"무슨 얘기야."


"늘 그랬잖아요. 처음 시작부터 나는 변한 적이 없어요. 자식에게 상처 주는 일은 못한다고..."


"아들에게 상처주기 싫다는 건 나도 인정해요. 그런데 늘 그랬잖아, 남편을 존경하고 가정을 깰 생각이 없다는 건 맞잖아."


"네, 맞습니다."


"이제 호주에 갈 상황이니까 내 이용가치가 없어진 거지. 나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거잖아."


"이용했다는 말은 당신이 한 말이니까 뭘 이용했는지 말하면 돼요. 증거 남긴다면서요? 뭘 이용했어요? 그래야 당신이 할 말이 있을 거 아냐. 뭐, 섹스?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니까 좋았어요. 내가 여자인 걸 다시 느끼게 돼서 좋았어요. 그게 이용한 건가요?


"아닌가?"

남자의 수그러진 어투와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는 듯한 화법이 여자의 화를 더 부추겼다.


"당신은 이용당했다며? 섹스가 첫 번째고 두 번째가 뭐예요? 내가 납득할 수 있게 뭘 이용했는지 내가 당신을 도대체..."


"내가 말했잖아요. 난 당신 도와준 거라고..."


"도와준 거랑 이용하는 거는 달라요."


"잠깐만, 이 이야기가 나온 게 당신이 나랑 끝낼 거라고..."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난 그런 적 없어요."


"오늘도 마찬가지예요. 기분 좋은 날 갑자기 이런 이야기 꺼내서 지금 이렇게 끝내자는 그런 분위기 만든 게 당신이잖아."


"끝낼 마음이 있는 사람이 뭐 하러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멍청한 시간을 보내요. 더구나 다음 달에 호주 가면 이제 보지도 못하는데... 아니, 끝낼 거면 이런 거 필요 없이 그냥 끝내면 되지. 가족들과 있어야 할 소중한 시간에 왜 그걸 다 빼고 당신을 우선으로 하고 당신이랑 이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손해 보는 느낌이 드니까, 이제 본전 생각나는 거 아닙니까?"


"본전 생각나면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당신처럼 본전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이렇게 하지 않겠죠. 근데 난 당신이 우선이니까, 당신이 마음이 아플까 봐, 혹여 다른 생각할까 봐, 당신과 나랑 상황이 다르니까 혼자인 당신이 더 마음 아플까 봐, 최대한 당신 마음 아프지 않게, 그리고 나도 당신이랑 있는 게 좋으니까... 헤어질 마음이 있으면 왜 그렇게 하냐고, 미쳤어요?"


"나를 이용한 줄 알았는데 보니까 이용한 건 아니네. 좋았던 것도 아니고 좋은 척했다는 거네. 그런 거잖아요. 그죠?"


여자는 갑자기 이건 무슨 말인가. 말문이 막혔다.


"중요한 건 이용했다는 거잖아. 이용했다며? 나는 그 말 때문에 당신 죽이고 싶었으니까."


"내가 죽을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거 같네요."


"죽을 일이지. 죽도록 사랑한다면서 이용했다고?"


남자는 식탁 위에 있는 칼을 챙겨서 치우기 시작했다.


"여기 놔두세요. 죽을 일이에요."


여자는 칼을 뺏어서 식탁 위에 던졌다. 남자가 재빠르게 칼을 감추면서 말했다.


"이거 내가 쓸 거 같으니까 그만둡시다."


"괜찮아요. 난 언제 죽어도 좋은 사람이니까. 당신은 죽는 게 무섭지만 난 무섭지 않거든요."


칼이 절그럭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안 보이게 밑으로 집어넣는지 스테인리스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하니 어쩌니 쭉쭉 빨더니 그러면서 이용했다고? 미친놈 아니야 진짜? 근데 이용했다는 게 뭔지 물어봤더니 뭐, 섹스? 그거는 너가 더 원한거지."


"알았어, 여기까지... 여기까지 녹음하자고요. 됐어."


남자는 녹음을 정지하고 핸드폰을 확인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뭘 여기까지야. 늘 이런 식이지."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고 나발이고 완전 개박살이다. 찌질하고 유치하다 못해 코믹한 그들의 연극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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