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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현호 Dec 17. 2018

6호선 잔 다르크를 찾습니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대하여 

  

아내가 며칠 전 지하철에서 겪은 일이라며 내게 아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는 연주를 위해 6호선 태릉입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임산부 좌석에 한 남성이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다. 아내가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서 꺼내 보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한데 이 자리는 임산부 배려석인데요, 제가 임산부라서요“


남성은 듣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빼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모습에 아내는 이내 곧 당황했다.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말했다. 


“여기 임산부 좌석이라서요”      


그러자 남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파묻고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아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살면서 그런 상황은 처음 겪어 봤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말을 못 알아들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여기 임산부석인데요, 제가 임산부라서요,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요?‘ 라고 적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 메모장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파묻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린 나이에 나에게 시집와서 이내 곧 아이를 가지고, 무거운 악기까지 들고 서울 반대편으로 가는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차로 편하게 데려다줄걸, 따뜻한 차라도 타서 보낼 걸하고 수많은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왔다.      


남성의 반응 없는 태도에 당황한 아내는 어찌할 줄 몰라 우선 지하철 칸의 정보를 적고 있을 때 즈음 근처에 있던 한 30대 초반의 여성이 등장했다. 그녀는 빠르게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한 마디 소리쳤다. 


“아저씨! 여기 임산부 배려석이에요! 임산부 앞에 서 있는 거 안보여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남성은 쑥스러운 듯 그제야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그렇게 시크하게 말하고 바로 열차를 나갔다. 아마 자신도 언제 개입할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개입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 사회에서 지하철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남의 일에 나서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녀의 용기를 기억한다.      


의외로 많은 임산부들이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양보는 권장이지 필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가 나오지 않은 초기 임산부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양보란 기본적으로 사회적, 신체적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시민 의식에서 시작한다. 강자에 굴하지 않고, 약자를 도울 줄 아는 사회를 꿈꾼다.      


배려석은 필수가 아니다. 

하지만 배려가 없는 배려석은 의미가 없다.      


2018년 12월 15일 저녁 6시경 6호선 태릉 입구 방향 동행하시던 잔 다르크를 찾습니다. 혹시나 이 글이 닿게 된다면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임산부 배려석에 아직도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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