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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현호 Jan 11. 2019

여권없이 입국한 첫 번째 한국인이 된 사연

여권없이 국제선을 타다

지난주 하와이 해변가에서 나는 가방을 도난당했고, 도둑은 가방 안의 차키로 주차장에 있는 차를 찾아 렌트카까지 훔쳐갔다. 그렇게 나는 출국 하루 전 외지에서 자동차, 여권, 핸드폰, 신용카드, 현금, 가방 등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다음날 출국 일정이다. 경찰은 여권이 급박하게 도난당한 경우의 관광객을 위하여 폴리스 리포트를 만들어 주었고, 그 리포트와 여권 사본 등 본인을 확인 할 수 있는 서류들이 있으면 여권이 없이도 안전하게 출국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실제 미국에서는 많은 관광객이 이러한 사고를 겪기에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출입국 사무소와 협력하며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당장 집에 갈 수도, 끼니를 해결할 수도 없어서 영사관에 연락을 했다. 그러자 그 곳에서는 경찰이 그렇게 말하는 건 잘못된 정보이며, 여권없이 출국을 못하기에 주말이 지나서 이틀 후 월요일이 되면 영사관에 들려 임시여권을 신청하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경찰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무슨 소리냐, 다 이렇게 하는데 왜 이 리포트로 출국을 못해” 하고 말하는데 경찰과 영사관 서로 말이 달랐다. 그렇게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연히 호텔 직원이 내게 말했다.

“예전에 다른 외국인 관광객도 똑같이 그런 일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폴리스 리포트랑 여권 사본으로 나갔는데, 왜 한국인만 안돼?”     


순간 깨달았다. 영사관에서 이 방법 자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이다. 바로 현지 경찰을 불러서 재확인을 하기로 했고, 경찰, TSA에서도 모두 이 방법으로 출국이 가능하다고 확인해주었다. 바로 영사관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재차 설명하고 영사관에서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으니 재확인을 요청드렸다. 원래 계획했던 출국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저희는 그런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렇게는 어려운 것이고요, 한 번 시도는 해보십시오. 하지만 확답을 드릴 순 없습니다.”    


주변의 경찰, 호텔 직원 모두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에서 이런 사고를 당한 관광객을 위해 서비스를 지원하는데 왜 한국 영사관에서만 그걸 막고 출국을 못하게 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하와이에서 우리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은 애석하게도 현지 경찰, 호텔 직원, Visitor Aloha Society of Hawaii 단체, 에어비앤비 호스트 등 현지인들이었다.     


짐을 싸고 바로 공항으로 달려갔다. 예정된 입국일 다음날 나는 너무나 중요한 기업 강연을 진행해야 했고, 아내는 학교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후 비행기로라도 반드시 타고 갔어야 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현지 대한항공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항공사에서도 불가능이라고 답을 했다. 내가 재차 대한항공의 공식 입장인지를 물었고, 담당자분은 법무부와 다시 확인하겠다며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10분 후 담당자분이 다시 오시며 말했다.     


“지금 법무부랑 다시 확인해봤는데요, 폴리스 리포트랑 여권 사본, 신분 확인 서류 등이 있다면 원칙적으로는 출국과 입국이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가 까다로울 수는 있습니다. 저도 이게 가능한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현재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일정은 내일 오전입니다.”     

 

출입국 관리법을 확인했다. (제6조② 출입국관리공무원은 국민이 유효한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그 밖의 사유로 이를 가지지 아니하고 입국하려고 할 때에는 확인절차를 거쳐 입국하게 할 수 있다.)     


결국 그 날 오후 비행기를 타진 못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어서야 진에어 항공권을 또 새로 구매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한국인 직원들 덕분에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여권 없이 미국을 출국하고 한국으로 입국한 사례가 되었다.    

  

내가 만약 사고 당일 영사관에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경찰의 의견에 따라 사고 다음날 예정대로 출국을 진행했을 것이고, 모든 일정에 차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영사관의 가이드가 법이라는 생각에 예정된 항공을 놓치고 하루를 허비하고 수많은 이중 피해가 발생해버렸다.      


내가 이러한 사고 발생 시 리포트와 여권 사본 등으로 출국이 가능하다고 말했을 때 관계 부처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안 된다고 말했다. 영사관, 항공사 등 모두가 같았다.      


‘그런 적은 없다. 모두가 임시 여권을 새로 만들어서 간다.’


비행기에 마침내 탑승할 때 진에어 하와이 지점장님이 우리가 무사히 탑승하기까지 직접 탑승구에서 기다리고 계시기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나온 그의 대답이 11시간 동안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전혀 아닙니다. 저희가 이 곳에서 한국인 손님들을 위해서 방법을 찾고, 안전하게 여행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당연한 거지요, 기다리느라 힘드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한국에서는 보편적 타당성을 벗어난 행동을 하면 이렇게 말한다.


‘다 그렇게 하는데 왜 너만 굳이 그러려고 해?’      


우리는 이미 세월호 사건을 보고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깨닫지 않았는가.     


직업에 대한 윤리의식, 사명이 없는 자들이 많을수록,

진실을 파헤치려 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남들이 간 길로만 편하게 가려는 자들이 많을수록,

이 사회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부시파일럿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 저자 오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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