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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Mar 28. 2021

외할머니의 평안

작년 봄, 외할머니께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다행인 건 말기치곤 할머니께서 건강상 무리가 없어 보였다는 점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할머니는 별로 내색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5월 즈음에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돼 결국 입원을 하셨고, 당시 난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하던 중이라 전화로만 그 소식을 전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플지 감도 안 온다. 엄마가 느끼는 그 슬픔을 나는 반의반도 느끼지 못했겠지. 엄마는 매일 같이 병원에 다녀왔다. 퇴근하고 차 밀리는 시간에도 꾸준히 병원으로 향했고, 아주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무거운 엄마의 목소리에 제주에 있던 나는 말뿐만인  위로를 건넸던 것 같다. 제주에서 육지로 돌아오자마자, 할머니를 뵈러 병원으로 향했다. 몇 달 전 마주한 할머니와는 너무 다른 모습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몇 달 새 이렇게 병세가 악화되다니, 말 한마디 겨우 이어가시는 모습에 울컥했고 그 옆을 지키는 엄마 모습에 결국 울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만큼, 우리 엄마도 할머니를 사랑하고 걱정하겠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위급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늦은 새벽 출발했지만 결국 임종은 지키지 못했다. 정신없는 엄마와 이모 대신에 내가 운전하고 가고 있었는데, 조금 더 빨랐더라면 하는 마음에 조금 죄스럽다. 더군다나 그다음 날 학교 기말고사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장례식장으로 바로 따라가지 못했다. 이게 맞는 걸까, 의문에 마음이 정말 불편하고 속상했다. 결국 다음날 시험을 치르자마자 장례식장으로 향했고, 엄마와 아빠, 다른 친척들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제주에서 돌아오고, 할머니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6월 한 달이 참 여러모로 기억에 남았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음력 4월 30일을 기억하자.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 25년의 시간 동안 꾸준한 사랑을 주신 외할머니의 평안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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