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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May 17. 2021

사랑니를 뺐다

대학교 시절, 나는 사랑니 네 개를 한 번에 뺀 걸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공강 시간에 계속 거슬리던 사랑니를 빼러 치과에 갔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그냥 한 번에 다 뽑을까요? 물어보시길래 겁도 없던 나는 그러죠 뭐, 하고 대답하고 마취를 시작했다. 난 정말로 턱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마취도 물론 아팠지만 그 큰 이빨 네 개를 뽑는 과정에서 입술은 찢어지고, 턱은 빠질 것 같고,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니 네 개를 뽑고 얼음팩으로 양쪽 볼을 감싸며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치과 가는 길은 분명 10분도 안 걸렸는데, 치과에서 나와 학교로 돌아오는 길은 30분 넘게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그때 당시엔 마취가 풀리면서 몽롱해진 탓에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었던 것 같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비틀비틀 걷는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나는 결국 다음 수업을 듣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귀가했다. 뜬금없이 사랑니를 네 개나 뽑고 돌아온 딸을 보고 엄마는 기겁해 야단쳤지만, 이미 뽑은 이후였으니 그저 다행이라고 했다. 치과를 두 번 가기 싫어서 한 번에 뽑은 건데, 얼굴엔 멍이 들었고 며칠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얼굴이 퉁퉁 부어 마스크를 일주일 내내 쓰고 다녔다.


내 사랑니 에피소드를 종종 말할 기회가 있는데, 그때마다 우스갯소리로 나처럼 한 번만 고생하는 게 낫다며 내가 다녀온 치과를 추천해주곤 한다. 여자라면, 이 정도 고통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않냐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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