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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ikun Aug 09. 2018

식은땀으로 적신, 나의 첫 해외학회

낯선 곳에서 낯선 시선으로

저번 학기는 분명히 수업이 두 개라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예상은 그저 나의 희망찬 기대에 불과한 것인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기말 과제로 제출해야 할 페이퍼 주제를 고심하다가, 어느 정도 윤곽을 잡게 되어 한고비 넘겼고, 엉망진창으로 끝날 것 같았던 다른 수업 발표도 그럭저럭 잘 넘어갔다. 남은 것은 학회에서 발표해야 할 15분 분량의 PPT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주 시간이 촉박했다. 


주제를 구체화하고, 나는 기말 페이퍼를 작성함과 동시에 데이터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우리 랩 선배들이 사용하던 파이썬 트위터 크롤러가 내 컴퓨터에서 말을 듣지 않아, 부랴부랴 다른 코드를 찾기 시작했다. Github야 말로 '정보의 바다'로 불릴만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불필요한 광고와 중복된 데이터, 그리고 이 데이터를 제대로 쓸 수는 있을까 고민이 많았지만, 다행히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다.


사람은 시간이 촉박해지면 집중력이 극대화된다고 했던가. 시간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지만 평소와 다른 집중력과 묘기로 페이퍼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바로 학회 준비를 시작해야만 했다. 약 일주일의 준비기간에는 나름 오전 10시까지 출근해 오후 11시까지 버티고 앉아있는, 으레 허리가 아플만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작성해도 되는 것일까 끊임없는 고민과 불안을 반복하며. 출국 전날까지 버티고 앉아 PPT를 완성했고, 확신은 없었지만 발표는 잘해보자고 다짐했다.


학회는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열렸다.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학회가 개최되는 대학의 위치, 내가 발표해야 할 강의실 등을 확인하고 휴식을 취했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발표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풍차 국의 배경을 고스란히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보다 하루 먼저 포스터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던 동기를 따라갔다. 분야는 다르지만 비슷한 방법론을 통해 연구한, 수많은 연구자들이 포스터 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난번 국내 학회에서도 거대한 규모와 인파에 놀랐지만, 이번엔 조금 색달랐다.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는 학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좁은 연구실을 떠나 넓은 세계에 나온 기분이었다. 왠지 모를 그들의 자신감과 노력, 그리고 다양한 연구 주제에 대한 토론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날이 밝았다. 전날 오후부터 어떻게 발표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어떻게 내 의견을 전달해야 할지, 내 연구 결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영어로 발표해야 하는 자리인지라 평소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먼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생각하고, 정리한 글을 바탕으로 영어 대본을 썼다. 물론 대본을 쓰고 발표하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지만 지금의 영어 실력으로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발표 전까지 열심히 발표 내용을 정리하고 연습했다. 그리고 세션장으로 찾아가 대충 분위기를 파악했고, 긴장한 심장도 제법 빨리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내 세션에서 앞서 발표한 두 명이 엄청난 포스를 뿜어대는 어떤 기업의 오랜 전문가였지만, 나는 나름대로 내 템포를 살리고자 노력했다. 발표가 진행될수록 땀이 났고, 내 특유의 긴장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머리를 만지고 땀이 나고 입술이 마르고.. 스크립트를 흘깃흘깃 보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발표를 이어나갔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15분이 마무리됐다. 이미 내 등은 땀으로 젖었고, 예상대로 맨 앞에서 강렬한 눈빛을 보내던 아저씨가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무슨 의미로 하는 질문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 되물었는데, 그 사람의 발표 내용과 비교해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냐는 뉘앙스였다. 발표 내용 중 어떤 부분에서 내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연구는 앞으로의 연구의 사전 연구로 사람들의 인식과 경향성을 파악하는 연구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가지는 한계점을 설명했다. 슬프지만 아직까지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도.


교수님이 추가적인 코멘트와 농담을 거들어주셔서, 제법 훈훈한 분위기 속에 발표는 무사히 일단락되는 듯했다. 박수와 동시에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잘할 수 있을까.

사실 신경 안 쓰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나의 눈치를 봐야 했다. 강의실 밖으로 나오며 지금까지와 다른 우울함이 나를 부축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함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교수님은 그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애써 위로해주셨다.


'내가 처음 해외에서 발표해본 건 서른두 살이었어요. 얼마나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했는지 몰라.'

'쉽지 않겠지만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그대로 잘 가지고 가세요. 그래야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설움과, 더 넓은 세계에서 벽을 마주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그날의 나를 덮쳤다. 언어도 환경도 모두 다른 낯선 이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하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지만 가치 있는 일이었다. 지금 그때 그 마음 그대로, 빛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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