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가 갈등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압도당하지 않는 법

싸우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때 향기의 이점

by 이지현

심장이 발끝까지 내려앉는 듯한 느낌.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고, 손바닥은 축축해지며, 귓가에는 날카로운 이명이 울립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은데, 정작 무슨 말을 하는지는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리고, 꼭 해야만 했던 말들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우리 초민감자(HSP)들에게 '갈등'은 종종 단순한 의견 다툼을 넘어, 생존의 위협과도 같은 극심한 감각적, 감정적 공격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내 의견을 굽히고, 부당함을 감수하며, 관계의 평화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곤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싸우지 않고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나의 중요한 가치가 침해당했을 때, 관계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갈등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우리가 유독 갈등 상황에서 쉽게 압도당하고 무너지는지 그 신경과학적 원인을 탐색하고, 이 감정의 폭풍 속에서 나의 중심을 잃지 않고, 나를 지키며 현명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도구, '향기'의 힘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왜 갈등은 초민감자를 압도하는가?

갈등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초민감자에게는 그 강도가 훨씬 더 파괴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는 우리의 신경계가 갈등 상황의 자극을 처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갈등을 단순한 '문제'가 아닌, '위험'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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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도피' 반응과 편도체 납치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의 비판적인 말투, 날카로운 눈빛, 높아진 목소리는 우리의 뇌에 '위협' 신호로 입력됩니다. 이때, 뇌의 경보 시스템인 편도체(Amygdala)가 즉각적으로 활성화되어 '투쟁-도피-경직(Fight-Flight-Freeze)' 반응을 일으킵니다. 문제는 초민감자의 편도체가 초민감자가 아닌 사람보다 훨씬 더 낮은 문턱의 자극에도 쉽게, 그리고 더 강렬하게 활성화된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약간 미간을 찌푸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편도체는 비상벨을 울릴 수 있습니다.

편도체가 뇌의 통제권을 장악하는 '편도체 납치' 상태가 되면, 이성적 사고와 문제 해결,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됩니다. 전두엽으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고, 뇌의 에너지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반응에만 집중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며,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하얘지고 아무 말도 못 하게 되거나, 혹은 반대로 의도치 않은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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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과부하와 시스템 셧다운

갈등 상황은 감각 정보의 홍수와 같습니다. 상대방의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의 표정, 제스처, 목소리의 톤, 주변 환경의 모든 자극(형광등 불빛, 에어컨 소리 등)이 한꺼번에 우리의 섬세한 신경계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깊은 정보 처리'를 하는 우리의 뇌는 이 모든 정보를 동시에, 그리고 깊이 있게 처리하려 애쓰다, 결국 정보 처리 용량을 초과하여 '시스템 셧다운', 즉 감각 과부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더 이상 어떤 정보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되고, 오직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본능적인 회피 욕구만이 남게 됩니다. 이는 마치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하여 컴퓨터가 다운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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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과 감정의 전염

높은 공감 능력은 갈등 상황에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분노나 실망, 슬픔과 같은 감정을 스펀지처럼 흡수하여, 마치 나의 감정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낍니다. 상대방의 분노에 나의 심장이 똑같이 뛰고, 그의 슬픔에 나의 눈가가 뜨거워집니다. 상대방의 고통에 압도되어 정작 내가 하려던 말을 잊어버리거나, 그의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너무 쉽게 타협하고 물러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나의 필요와 감정을 희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져, 갈등이 끝난 후에도 깊은 억울함과 무력감을 남깁니다.




향기, 감정의 폭풍 속 '안전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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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압도적인 감정의 폭풍 속에서, 향기는 우리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나의 중심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심리적 안전지대'를 마련해 줍니다. 향기는 과열된 편도체를 진정시키고, 마비되었던 전두엽의 기능을 회복시켜, 우리가 '반응'이 아닌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향기를 맡는 행위는, 혼란스러운 외부 세계에서 나의 내면으로 주의를 돌리는 의식적인 행위이며, 이 작은 행동 하나가 감정의 흐름을 바꾸는 강력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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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아로마테라피스트 이지현입니다. 법학과와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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