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고장 난 '정지' 버튼을 누르는 법
하루가 끝나고 마침내 혼자가 된 시간.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꺼지지 않는 스크린이 켜지고, 오늘의 대화들이 원치 않는 재방송처럼 반복 재생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했던 농담에 아무도 웃지 않았던 그 순간의 침묵, 상사의 미간에 스쳤던 미세한 찌푸림, 친구의 메시지에 담긴 애매한 뉘앙스. 당신은 이 장면들을 수십, 수백 번씩 되감기하며 분석하고 편집합니다.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내 표정이 너무 어색했어.', '결국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이처럼 과거의 순간에 갇혀 스스로를 심판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반추 사고(Rumination)', 즉 '생각 곱씹기'라고 부릅니다.
초민감자의 뇌는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을 고화질의 영상으로 녹화하고, 그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의 목소리 톤, 눈빛, 자세, 그리고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맥락을 '깊이 처리'합니다. 대화가 끝난 후에도, 이 분석 작업은 멈추지 않습니다. 뇌는 녹화된 영상을 계속해서 돌려보며, 혹시 내가 놓친 단서는 없는지, 더 나은 대응은 없었는지, 이 상호작용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합니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려는 뇌의 성실한 노력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를 과거의 사소한 디테일에 매몰시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덫이 됩니다.
우리는 대화를 곱씹을 때, 단순히 사실 관계만을 복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내가 느꼈던 감정, 그리고 상대방이 느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감정까지 고스란히 '재경험'합니다. 타인의 감정을 거울처럼 비추는 '거울 뉴런' 시스템이 고도로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했던 말에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기분 나빴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의 불쾌감을 마치 나의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며 수치심과 죄책감에 휩싸입니다. 이처럼 곱씹는 행위는 단순한 생각의 반복을 넘어, 이미 지나간 감정의 고통을 현재로
계속해서 소환하여 우리를 괴롭히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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