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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민감자(HSP) 시야를 좁혀주는 명료한 향기

빽빽한 일정표가 주는 거대한 압박감

by 이지현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캘린더나 업무 목록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들, 오늘 안에 처리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뇌가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듯한 기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 들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막막함에 압도되곤 합니다. 이 거대한 산을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밀려오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당신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 신경계가 보내는 자연스러운 신호일 수 있습니다.

초민감자(HSP)의 뇌는 눈앞에 보이는 일정표를 단순히 텍스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각의 일정 뒤에 숨겨진 부담감, 예상되는 어려움, 그리고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소모될 에너지까지 순식간에 계산하고 시뮬레이션합니다. 빽빽한 일정은 단순한 시간표가 아니라, 당신이 감당해야 할 감각적, 정서적 부하의 총량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뇌는 미리 지쳐버리고 방어 기제를 작동시켜 회피나 무기력이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압도감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넓은 시야가 아니라, 오히려 시야를 좁히는 기술일 수 있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운전할 때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바로 그 앞만 보고 가듯, 우리의 뇌에게도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단 하나만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흩어진 주의력을 모아주고 복잡한 머릿속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아로마테라피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왜 우리는 캘린더 앞에서 얼어붙는가?

미래 시뮬레이션 기능의 과부하

초민감자의 뇌는 깊은 정보 처리 특성으로 인해, 미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캘린더의 오후 2시 회의라는 항목을 보면, 단순히 시간 약속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 분위기, 예상되는 질문, 나의 답변, 혹시 모를 실수에 대한 대처까지 무의식적으로 시뮬레이션하게 됩니다. 목록에 있는 일이 많을수록 이 시뮬레이션 과정은 복잡해지고, 뇌의 작업 기억 용량을 초과하게 됩니다. 결국 뇌는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 과부하 상태에 빠지고,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작동을 멈추는 얼어붙음 반응을 보이게 될 수 있습니다.


전체를 한 번에 보려는 습관

우리는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데 능숙하지만, 때로는 이것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업무 목록을 볼 때,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기보다,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덮쳐오는 듯한 덩어리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개별적인 나무를 보는 대신 거대하고 빽빽한 숲 전체를 한눈에 담으려다 보니, 숲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 규모에 압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하지?라는 생각은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고, 무기력감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완벽주의

빽빽한 일정은 곧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초민감자에게,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시간 내에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퀄리티가 떨어질 것에 대한 걱정은 코르티솔 수치를 높이고, 이는 다시 인지 기능을 저하시켜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캘린더는 단순한 일정표가 아니라, 내가 넘어야 할 높고 위험한 장애물들의 연속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뇌과학으로 본 터널 시야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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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아로마테라피스트 이지현입니다. 법학과와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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