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속에 담긴 향기의 단서 천 년을 가는 향기
동아시아의 숲에는 천 년의 시간을 머금고 뿜어내는 독보적인 향기가 있다. 바로 편백(Hinoki)의 향이다. 이 나무가 고대부터 최고의 건축 자재로 추앙받았던 이유는 단지 단단해서가 아니라, 그 나무가 뿜어내는 향기가 공간을 성스럽게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에게 편백의 향은 신을 부르는 신호였으며, 부정을 씻어내는 정화의 도구였고, 권력자의 공간을 채우는 고귀함의 상징이었다. 불의 나무라는 어원조차 타오를 때 피어오르는 그 강렬한 향기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이번 글에서는 편백이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후각적 의미를 추적하고, 고대 신전의 신성한 공기부터 중세 일본 귀족의 은밀한 다실까지, 편백의 향기가 어떻게 동아시아의 정신문화를 지배해 왔는지 그 향기로운 역사를 알아보고자 한다.
편백을 지칭하는 말들 속에는 이 나무가 가진 향기의 속성이 암시되어 있다. 마찰열로 불을 피울 때 나는 매캐하면서도 향긋한 냄새, 그리고 태양 아래서 더욱 짙어지는 그 숲의 내음이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불의 나무라는 뜻의 히노키는, 고대인들이 이 나무를 비벼 불을 얻던 행위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단순히 불이 잘 붙는다는 기능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찰열에 의해 나무가 그을릴 때, 편백은 특유의 짙고 매혹적인 향기를 폭발적으로 발산한다. 고대 제사 의식에서 신성한 불을 피울 때 퍼지는 강렬한 나무 향은, 신이 강림하는 순간을 알리는 후각적 신호로 활용 되었을것이다.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편백의 향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불이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향기라는 후각적 경험을 동시에 각인시켰다.
태양의 나무라는 해석은 편백 향기가 가진 따뜻함과 밝음을 상징한다. 편백 숲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그 상쾌하면서도 쨍한 피톤치드 향은, 음습한 기운을 몰아내는 태양의 에너지와 닮아 있다. 고대인들은 이 향기가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기운을 품고 있다고 믿었다. 햇볕을 받아 건조된 편백나무에서 나는 은은하고도 건조한 향기는, 눅눅한 습기를 제거하고 공간을 쾌적하게 만드는 양(陽)의 에너지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즉, 편백의 향은 어둠과 습기를 물리치는 태양의 후각적 현현이었다.
한자어 편백은 납작한 잎의 모양을 묘사하지만, 이 잎이야말로 편백 향기의 가장 직접적인 발원지이다. 잎 뒷면의 기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테르펜 성분은 숲 전체를 청량한 공기로 채운다. 잎을 손으로 비볐을 때 터져 나오는 풋풋하고 톡 쏘는 레몬 뉘앙스의 향기는, 나무 기둥의 묵직한 향과는 또 다른 생동감을 준다. 고대인들은 이 잎을 목욕물에 띄우거나 태워서 그 청량한 향기를 즐겼으며, 이는 편백이 가진 정화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대 건축에서 편백을 고집한 이유는 내구성을 넘어선 공간의 질 때문이었다. 편백으로 지어진 신전과 사찰은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인 나무 향기로 방문자를 제압하고 신성한 세계로 인도한다.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인 호류지의 금당에 들어서면, 1,300년이 지난 지금도 은은한 편백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고대 장인들은 편백이 벌채된 후에도 수백 년 동안 향기를 내뿜으며 호흡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기둥들이 뿜어내는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건물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숨결과도 같다. 사찰 내부를 가득 채우는 이 고대의 향기는, 불상 앞에 선 인간에게 시간의 영속성을 감각하게 하고, 세속의 번뇌를 잊게 만드는 거대한 후각적 장치로 기능했다.
편백 향기의 핵심 성분인 피톤치드와 히노키티올은 강력한 살균 및 방충 효과를 지닌다. 고대 건축가들에게 편백의 향기는 건물을 좀먹는 해충과 곰팡이를 막아주는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었다. 덥고 습한 기후 속에서도 신전이 썩지 않고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편백나무가 끊임없이 뿜어내는 이 항균성 향기 덕분이었다. 따라서 신전 안의 공기는 바깥세상의 공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불순물이 제거된 무균의 공간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종교적 신성함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했다.
편백의 향기는 종교적 의식에서 부정을 씻어내고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에너지를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
20년마다 신전을 새로 짓는 이세 신궁의 식년천궁 의식은, 편백 향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묵은 나무를 헐어내고 갓 벌채한 싱싱한 편백나무로 지은 신전은, 강렬하고 신선한 나무 향기로 가득 찬다. 이 풋풋한 향기는 항상 젊고 새롭다는 도코와카(常若) 사상을 후각적으로 구현한다. 신에게 바치는 것은 낡은 것이 아닌, 생명력이 넘치는 새로운 향기여야 했다. 이 강렬한 피톤치드 향 속에서 참배객들은 영혼이 씻겨나가는 듯한 정화의 감정을 느끼며, 신의 생명력을 호흡한다고 믿었다.
헤이안 시대의 일목조(一木造) 불상은 편백 통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조각가들은 나무를 깎을 때 퍼지는 향기를 맡으며, 나무속에 깃든 부처의 형상을 찾아냈다. 완성된 불상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편백 향은, 불상에 신성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요소였다. 사람들은 불상 앞에 엎드릴 때, 시각적인 자비로움뿐만 아니라 후각적으로 전해지는 따뜻하고 안온한 나무 향을 통해 위로받았다. 이는 향을 피우는 인위적인 행위 이전에, 재료 그 자체가 발산하는 본연의 향기로 종교적 체험을 심화시킨 예이다.
신사 입구에서 손과 입을 씻을 때, 혹은 제례 의식에서 편백 잎을 물에 띄우거나 가지를 흔드는 행위는 그 청량한 향기를 이용한 정화 의식이다. 편백 잎의 톡 쏘는 향은 나쁜 기운을 쫓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각성 효과가 있다.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서기 전, 이 향기를 맡음으로써 사람들은 세속의 냄새를 지우고 몸과 마음을 정결히 했다. 서양의 인센스가 연기로 공간을 정화한다면, 동양의 편백은 그 자체의 생명력 있는 향기로 공간을 씻어내는 역할을 했다.
일본의 신성한 나무였던 편백이 한국의 땅에 뿌리내리고 독자적인 치유의 숲으로 거듭난 과정은, 문명의 교류와 현대적 재해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이다.
한국 편백의 역사를 논할 때 전남 장성 축령산의 편백 숲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조성된 이 숲은,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울창한 숲이 되었다. 척박했던 땅에 심어진 어린 편백 묘목들은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며 하늘을 찌를 듯한 거목으로 자라났다. 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피톤치드 향기는, 한국인들에게 편백을 건축 자재가 아닌 살아있는 치유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 편백이 신(神)과 권력을 상징하는 향기였다면, 한국에서 편백은 건강과 치유를 상징하는 대중적인 향기로 재해석되었다. 아토피나 스트레스 등 현대병을 앓는 사람들은 편백 숲을 찾아 삼림욕을 즐기고, 집 안에 편백 가구와 오일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이는 편백의 향기가 가진 본질적인 힘인 항균과 진정 작용에 주목한 결과이다. 바다를 건너온 이 나무는 이제 한국인의 일상 속에서 가장 친숙하고 사랑받는 건강한 향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편백의 역사는 동아시아인들이 어떻게 자연의 향기를 신성함과 치유의 언어로 번역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후각 문화의 연대기이다. 불을 피울 때 피어오르는 강렬한 향기에서 시작해, 신전의 신성한 공기를 채우고, 의식을 통해 영혼을 정화하며, 마침내 현대인의 일상 속 치유의 공간으로 스며든 편백의 여정은, 향기가 단순한 감각을 넘어 문화와 신앙, 그리고 삶의 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증명한다.
일본에서 신의 나무로 숭배받던 편백이 한국의 땅에서 대중의 나무로 재탄생한 과정은, 같은 향기라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편백의 향기는 여전히 우리를 정화하고, 위로하며, 일상의 공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천 년 전 신전에서 맡았던 그 향기와, 오늘날 숲길을 걸으며 마시는 그 향기는 결국 같은 생명의 숨결이다.
편백의 향기로운 연결고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삶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