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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어때요?"라는 말의 무게감

복잡하게 얽힌 아침의 감정타래

by 이지현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동료가, 혹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가족이 무심코 건네는 "오늘 기분 어때?", "컨디션 괜찮아?"라는 질문.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가벼운 인사치레나 안부 묻기 정도의 의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초민감자(HSP)들에게 이 질문은 순간적으로 뇌를 멈칫하게 만드는 고난도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젯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불안하기도 한데, 아침 공기는 상쾌해서 좋기도 하고, 근데 오후 회의 생각하면 벌써 긴장되고... 수많은 감정의 레이어가 겹쳐져 있는 상태에서, "좋아요" 혹은 "별로예요"라는 단답형 대답은 왠지 나의 상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HSP의 아침은 단순히 잠에서 깨어남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밤새 무의식 속에서 처리된 수많은 정보들의 잔여물, 눈을 뜨자마자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소리의 자극, 그리고 오늘 하루 마주해야 할 일들에 대한 예기 불안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옵니다. 그래서 아침의 내면은 명확한 하나의 색깔이라기보다는, 여러 물감이 섞여 정의하기 힘든 모호하고 복잡한 색깔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기분이 나조차도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타인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은 뇌에 순간적인 부하를 일으키고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복잡한 아침의 감정을 단순화하고, 나만의 긍정적인 감정 키워드를 설정하여 하루를 명료하게 시작하는 방법을 함께 알아보려 합니다.




왜 우리의 아침 감정은 유독 복잡할까?

깊은 정보 처리와 감정의 레이어

초민감자의 뇌는 정보를 깊이 처리하는 특성이 있어,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자신과 주변 환경을 세밀하게 스캔하기 시작합니다. 창밖의 날씨, 이불의 감촉, 몸의 컨디션, 어제의 기억 등이 순식간에 분석되어 감정으로 변환됩니다. 이 과정에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과거의 회한과 미래의 걱정이 동시에 떠오르며 서로 얽히게 됩니다.


신체적 감각과 정서의 혼재

HSP는 신체적 감각과 정서적 반응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조금만 무거워도 마음이 가라앉고, 속이 약간만 불편해도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찌뿌둥하면, 그것이 단순히 잠을 잘못 자서인지 아니면 심리적인 우울감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신체적인 불편함이 정서적인 불안으로, 다시 신체적인 긴장으로 이어지는 피드백 루프 속에서, 내가 느끼는 이 불쾌감이 정확히 어디서 기인하는지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되며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타인의 반응에 대한 시뮬레이션

"기분 어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반응을 시뮬레이션하기도 합니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저 사람이 부담스러워할까?, 너무 좋다고 하면 상황 파악 못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질 때문에, 나의 대답이 상대방에게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느라 단순한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의 단순화가 필요한 이유

에너지 누수를 막는 댐

복잡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모두 안고 하루를 시작하려 하면, 그 감정들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에만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모호하고 섞이지 않는 감정들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은 마치 구멍 난 댐을 손으로 막고 있는 것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단순화한다는 것은 이 구멍들을 메우고 에너지의 누수를 막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내 기분은 상쾌함으로 정했다"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리는 순간, 뇌는 그 외의 자잘하고 복잡한 감정 정보들을 처리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하루의 방향키 설정하기

아침의 감정은 그날 하루의 항해를 결정하는 방향키와 같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배를 띄우면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기분이 어떤지 모르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면 외부의 자극이나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게 될 수 있습니다. 향기를 통해 "오늘은 맑음"이라는 명확한 방향키를 설정하면, 중간에 비바람을 만나더라도 다시 원래의 경로로 돌아오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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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아로마테라피스트 이지현입니다. 법학과와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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