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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나갈 '안전한 용기'를 주는 향기

현관문 앞에서 멈칫하는 초민감자에게

by 이지현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메고,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당신은 잠시 동작을 멈춥니다. 문 하나만 열면 펼쳐질 바깥세상의 소음, 복잡한 인파,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등 뒤에 있는 집은 너무나 고요하고 안전한데, 문밖은 마치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초민감자(HSP)에게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수만 가지의 감각적 자극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일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과거에 경험했던 시끄러운 지하철, 사무실의 긴장감, 타인의 시선 등을 기억하고 있기에,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그 자극들을 예상하며 몸을 긴장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할 수 있을까?, 에너지가 다 소진되면 어떡하지?라는 무의식적인 걱정이 현관문 앞에서 발길을 잡는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용기나 비장한 각오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저 나를 보호해 줄 얇지만 든든한 막 하나가 씌워진 느낌, 마치 투명한 방패를 든 것 같은 작은 안심이면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감각을 감싸 안아 외부의 자극을 부드럽게 걸러주는 필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현관문 앞에서 멈칫하는 당신을 위해, 세상으로 나아갈 안전한 용기를 건네는 향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왜 현관문은 가장 넘기 힘든 경계선일까?

감각의 온도 차이

집 안과 밖은 물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온도 차이가 매우 큽니다. 집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조명, 소리, 냄새로 채워진 공간이지만, 밖은 예측 불가능하고 강렬한 자극들이 혼재된 공간입니다. 초민감자의 신경계는 이러한 급격한 환경 변화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따뜻한 물속에 있다가 갑자기 차가운 공기 밖으로 나올 때 몸이 움츠러드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안전한 둥지를 떠나 야생으로 나가는 순간에 본능적인 위축감을 느끼곤 합니다. 현관문은 이 두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기에, 그 앞에서 느끼는 저항감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에너지 보존 본능의 발동

HSP는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외부 활동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뇌는 무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외출을 미루거나 피하려는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나가지 마, 여기가 안전해"라고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는, 사실 당신을 지키고 싶어 하는 신경계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이 본능을 거스르고 밖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현관문 앞에서의 갈등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작은 전쟁이 되곤 합니다.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하는 부담감

집에서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직장인, 학생, 친구 등 사회적 역할에 맞는 가면을 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 분위기를 맞추며,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사회적 연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현관문 앞에서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면을 쓰는 과정 자체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기에, 그 시작점인 현관에서 무게감을 느끼는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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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아로마테라피스트 이지현입니다. 법학과와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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