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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별, 스타아니스

팔각(八角), 여덟 개의 뿔이 품은 치유와 유혹의 비밀

by 이지현

향신료의 세계에서 스타아니스(Star Anise)만큼 독특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지닌 것은 드물다. 여덟 개의 붉은 갈색 꼬투리가 방사형으로 뻗어 별 모양을 이루는 이 열매는, 그 생김새만큼이나 강렬하고 신비로운 향기를 품고 있다. 중국 남부와 베트남 북부의 깊은 숲에서 자라는 이 상록수는 수천 년 동안 동양 의학에서 몸을 데우고 통증을 멎게 하는 약재로 사용되어 왔다. 대항해시대를 거쳐 서양에 전해졌을 때, 유럽인들은 이 낯선 열매가 지닌 달콤한 감초 향에 매료되었고, 기존의 아니스(Anise)를 대체하는 귀한 향신료로 대접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원료로 밝혀지며 그 의학적 가치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번 글에서는 스타아니스의 이름 속에 담긴 동서양의 시각 차이를 추적하고, 이 별 모양의 열매가 걸어온 향기로운 여정을 상세히 알아본다.




이름의 기원과 식물학적 정체성

스타아니스를 지칭하는 이름들은 이 식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모양'과 '향기'를 직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서양의 식물학적 명칭과 동양의 전통적 명칭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이 식물을 정의한다.


라틴어 '일리키움(Illicium)'유혹하는 향기

스타아니스의 속명인 '일리키움(Illicium)'은 라틴어로 '유혹하다' 또는 '매혹하다'라는 뜻을 가진 '일리세레(Illicere)'에서 유래했다. 이는 스타아니스 특유의 달콤하고 강렬한 향기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나무 근처에 가면 잎과 열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식물학자들은 이 향기가 단순히 곤충을 유인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식욕을 돋우는 강력한 유인책임을 이름에 담았다. 서양인들에게 이 향기는 낯설지만 거부할 수 없는 동양의 신비로운 유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중국어 '팔각(八角)'여덟 개의 뿔

동양, 특히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이 식물을 '팔각' 또는 '팔각회향'이라고 부른다. 이는 열매가 여덟 개의 꼬투리로 갈라져 별 모양을 이루고 있는 형태적 특징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회향(茴香)'은 본래 미나리과 식물인 '펜넬(Fennel)'이나 '아니스(Anise)'를 뜻하는데, 스타아니스의 향이 이들과 비슷하다 하여 '여덟 개의 뿔이 달린 회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숫자 '8'은 중국 문화에서 행운과 번영을 상징하는 숫자로, 팔각은 단순한 향신료를 넘어 복을 불러오는 상서로운 식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아니스(Anise)와의 식물학적 차이

'스타아니스'라는 영어 이름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를 '아니스'의 일종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식물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가문에 속한다. 아니스는 지중해가 원산지인 미나리과의 일년생 풀이고, 스타아니스는 동아시아가 원산지인 붓순나무과의 상록 교목이다. 두 식물이 전혀 다른 진화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유사한 향 성분을 공유하는 것은 자연의 흥미로운 우연으로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은 이 낯선 동양의 열매에서 익숙한 아니스의 향을 맡고 '별 모양의 아니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온기를 불어넣는 약과 향신료

중국에서 스타아니스는 기원전부터 요리와 의학의 필수 요소로 사용되어 왔다. 그들은 이 열매가 가진 '양(陽)'의 에너지를 활용하여 몸과 음식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를 발휘했다.


중의학의 속을 데우다

중국 전통 의학에서 스타아니스는 대표적인 몸속의 차가운 기운을 몰아내고 장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약재로 분류된다. 특히 신장(콩팥)의 양기를 북돋아 허리나 무릎이 시리고 아픈 증상을 완화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하여 구토나 복통을 다스리는 데 처방되었다. 겨울철에 스타아니스를 달여 마시는 것은 감기를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민간요법으로 통했다. 이는 스타아니스가 단순한 맛을 넘어, 인체의 에너지 흐름을 조절하고 생명력을 강화하는 기능성 물질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오향분의 핵심

중국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 '오향분(五香粉)'은 스타아니스, 정향, 계피, 화자오(산초), 펜넬 등을 혼합한 향신료이다. 여기서 스타아니스는 가장 중심이 되는 재료로, 고기나 생선의 잡내를 없애고 식욕을 돋우는 달콤하고 알싸한 향을 담당한다. 중국인들은 음식에 스타아니스를 사용하는 것을 '음양의 조화'를 맞추는 행위로 보았다. 차가운 성질의 식재료에 뜨거운 성질의 스타아니스를 더함으로써, 음식의 균형을 맞추고 소화를 돕는다는 원리이다. 동파육이나 족발 같은 요리에 팔각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나라와 향약 무역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해상 무역이 발달하면서, 중국 남부에서 생산된 스타아니스는 중요한 교역품이 되었다. 당시 '향약(香藥)'은 사치품이자 필수 의약품으로 취급되었으며, 스타아니스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그리고 페르시아 상인들을 통해 서쪽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문헌에 따르면 송나라 황실에서는 스타아니스를 포함한 다양한 향료를 사용하여 연회를 베풀거나 의식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이는 스타아니스가 서민의 부엌뿐만 아니라 황실의 권위를 드러내는 향기로운 도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문화 속의 스타아니스

스타아니스는 단순한 약재를 넘어, 서양의 주류 문화와 동양의 차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특유의 향은 음료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압생트와 아니스 리큐어의 주원료

'녹색 요정'이라 불리며 19세기 예술가들을 매혹시켰던 술 '압생트(Absinthe)', 프랑스의 국민 술 '파스티스(Pastis)', 그리스의 '우조(Ouzo)', 이탈리아의 '삼부카(Sambuca)'.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아니스 향이 난다는 것이다. 원래는 지중해의 아니스를 사용했으나, 향이 더 강하고 저렴한 스타아니스가 그 자리를 대체하거나 혼합되어 사용되었다. 스타아니스의 오일은 알코올에는 녹지만 물에는 녹지 않기 때문에, 이 술들에 물을 타면 뿌옇게 변하는 '우조 효과(Ouzo effect)'를 일으키는데, 이는 스타아니스 속 아네톨 성분의 물리적 특성 때문이다.


뱅쇼(Vin Chaud)의 겨울 향기

유럽의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겨 마시는 따뜻한 와인 '뱅쇼'나 '뮬드 와인'에는 시나몬, 클로브와 함께 스타아니스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와인에 별 모양의 팔각을 띄우는 것은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달콤하고 묵직한 향이 와인의 산미를 중화시키고 깊은 풍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뱅쇼 잔에서 피어오르는 스타아니스의 향기는 몸을 녹이고 마음을 위로하는 겨울의 상징과도 같은 향기이다.


짜이(Chai)와 동양의 차 문화

인도의 향신료 밀크티인 '마살라 짜이'에도 스타아니스는 종종 사용된다. 카다멈, 생강 등과 어우러진 스타아니스의 향은 우유의 비린내를 잡고 차에 달콤한 깊이를 더해준다. 또한 베트남의 쌀국수 '포(Pho)' 국물을 우려낼 때도 구운 양파, 생강과 함께 구운 스타아니스가 반드시 들어간다. 그 은은하고 달큰한 향은 고기 육수의 느끼함을 잡고 이국적인 풍미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여덟 개의 뿔을 가진 이 작은 별, 스타아니스는 동양의 깊은 숲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인의 식탁과 약상자를 채워왔다.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몸을 데우는 양기(陽氣)의 원천이었고,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귀한 동방의 맛이었으며, 현대인들에게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의학적 무기이자 겨울의 낭만을 더하는 향기이다. 스타아니스의 역사와 어원을 탐구하는 것은, 인류가 자연 속에서 어떻게 치유의 물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문화와 과학으로 승화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이 별 모양의 열매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매혹적인 향기로 그 긴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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