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새 다이어리 앞에서의 망설임
일요일 저녁, 책상 위에 놓인 새해 다이어리를 바라봅니다. 빳빳한 표지와 아직 아무런 자국도 남지 않은 깨끗한 종이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무게감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첫 글씨를 예쁘게 써야 할 것 같고, 첫 계획은 원대하고 빈틈이 없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펜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혹시라도 실수를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게 써지면 1년 전체를 망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손끝을 망설이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하얀 종이가 주는 침묵은 때로 우리에게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초민감자(HSP)들은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성향이 강해, 다이어리를 단순한 메모장이 아닌 삶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주는 완벽하게 계획해야 해",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돼"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다이어리 펼치는 시간을 즐거운 상상의 시간이 아닌, 엄격한 숙제의 시간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빽빽하게 채워진 계획표만이 안심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은, 오히려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분석 마비를 불러오고, 일요일 저녁의 편안한 휴식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이어리 앞에서 긴장하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펜이나 더 정교한 계획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자몽과 라임의 향기를 통해 새해 다이어리에 대한 부담감을 설렘으로 바꾸고,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기분으로 첫 페이지를 채우는 방법을 함께 알아보려 합니다.
초민감자의 뇌는 정보를 깊이 처리하는 특성이 있어, 계획을 세운다는 행위 자체를 매우 진지하고 복잡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이어리에 일정 하나를 적으려 할 때, 뇌는 그 일정과 관련된 수많은 변수, 필요한 준비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그리고 그 결과가 미칠 영향까지 순식간에 시뮬레이션하게 됩니다. 글자 하나를 적는 것은 1초면 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 일정을 소화해 내느라 에너지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과도한 정신적 리허설은 빈 페이지를 채우는 것을 버거운 노동으로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적 성향은 종종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느낄 실망감이나 자책감을 미리 걱정하기 때문에, 아예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다이어리의 빈칸은 채워지지 않은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키지 못할 약속들이 기록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다이어리를 펼치는 것을 미루거나, 펼쳐놓고도 딴짓을 하며 회피하려는 본능이 작동할 수 있습니다.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다는 것은 그것을 물리적인 실체로 남기는 행위입니다. 머릿속의 생각은 흘러가면 그만이지만, 다이어리에 적힌 글씨는 지우지 않는 한 계속 그 자리에 남아있습니다. HSP는 자신의 흔적이나 기록에 대해 민감할 수 있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씨체나 내용이 영원히 남을까 봐 걱정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쓰면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 혹은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펜 끝을 무겁게 짓누르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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