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터 오렌지 나무의 선물
오렌지 나무는 인류에게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향기를 선물하는 축복받은 식물이다. 과일 껍질에서는 달콤한 오렌지 오일이, 순백의 꽃에서는 고귀한 네롤리 오일이, 그리고 푸른 잎과 어린 가지에서는 싱그러운 페티그레인 오일이 추출된다. 페티그레인은 화려한 꽃향기나 달콤한 과일 향에 가려져 종종 조연으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그 역사적 깊이와 실용적인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은 알갱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 속에는 초기 추출 방식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동방에서 시작되어 지중해를 거쳐 유럽의 수도원으로 이어진 여정은 향료가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향기는 신경을 안정시키는 진정제였고, 악취를 덮는 위생 용품이었으며, 훗날 오 드 코롱의 뼈대가 되는 중요한 원료였다. 이번 글에서는 페티그레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밝히고, 고대 아시아의 야생 귤나무 잎이 어떻게 유럽 귀족들의 사랑을 받는 향기가 되었는지 그 역사를 상세히 알아본다.
프랑스어 프티 그렝, 작은 알갱이의 의미
페티그레인은 프랑스어 프티 그렝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프티는 작다는 뜻이고, 그렝은 곡물이나 알갱이, 혹은 씨앗을 의미한다. 즉,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작은 알갱이라는 뜻이 된다. 17세기 이전, 증류 기술이 아직 잎의 섬세한 향을 완벽하게 포착하기 전에는, 오렌지 나무에 열린 아주 작은 풋열매를 따서 오일을 추출했다. 벚찌 크기만 한 이 설익은 초록색 열매들이 마치 곡물 알갱이처럼 보였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에는 이 작은 열매에서 나오는 톡 쏘는 향기가 잎의 향기보다 더 응축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실제로도 매우 강렬한 그린 노트의 향을 얻을 수 있었다.
초기에는 작은 열매를 따서 오일을 만들었지만, 이는 경제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열매를 어릴 때 따버리면 나중에 다 자란 오렌지를 수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렌지 농작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자들은 점차 열매 대신 무성하게 자라나는 잎과 잔가지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전환했다. 증류 기술이 발전하면서 잎에서도 충분히 훌륭하고 풍부한 향을 추출할 수 있게 되자, 굳이 아까운 열매를 희생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추출 부위는 열매에서 잎으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작은 알갱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페티그레인은 주로 비터 오렌지 나무의 잎에서 추출된다. 스위트 오렌지나 레몬 나무의 잎에서도 오일을 얻을 수는 있지만, 비터 오렌지 잎에서 나오는 향기가 가장 복합적이고 깊이가 있어 최상급으로 친다. 하나의 나무에서 꽃(네롤리), 과일(비터 오렌지), 잎(페티그레인)이라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향료가 나온다는 것은 고대인들에게 매우 신비로운 일이었다. 페티그레인은 꽃향기의 우아함과 과일 향의 상큼함을 은은하게 내포하면서도, 나무 고유의 쌉싸름하고 신선한 풀 냄새를 지니고 있어, 다른 두 가지 향을 연결하고 지탱하는 허리 역할을 수행하는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했다.
히말라야와 중국 남부의 야생 귤나무
비터 오렌지의 원산지는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 기슭과 중국 남부,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 일대로 추정된다. 고대 아시아 사람들은 이 야생 귤나무의 잎을 약재로 활용했다. 중국의 전통 의학에서는 귤나무 잎을 말려 차로 마시거나 탕약에 넣어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이며, 뭉친 기운을 풀어주는 데 사용했다. 인도의 아유르베다에서도 쓴 오렌지 나무의 잎과 껍질은 소화를 돕고 열을 내리는 중요한 약초였다. 이 시기에 페티그레인은 향료라기보다는 실질적인 치유를 위한 약초로서 사람들의 곁에 존재했다. 잎을 비볐을 때 나는 강한 향기는 나쁜 기운을 쫓는 힘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무역로가 열리면서 이 향기로운 나무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페르시아(이란) 지역에 당도했다. 페르시아인들은 정원 문화에 조예가 깊었으며, 사계절 푸른 잎과 향기로운 꽃,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비터 오렌지 나무를 사랑했다. 그들은 이 나무를 나랑이라 불렀는데, 이는 훗날 스페인어 나란하와 영어 오렌지의 어원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의사들은 잎을 증류하거나 기름에 우려내어 복통이나 신경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페르시아의 정원에서 비터 오렌지 나무는 단순한 과일 나무가 아니라, 그늘과 향기를 제공하는 휴식의 공간을 만드는 중요한 조경수였다.
7세기 이후 이슬람 제국이 팽창하면서 비터 오렌지 나무는 아랍 상인들과 군대에 의해 지중해 연안으로 퍼져나갔다. 아랍인들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과 시칠리아 섬에 이 나무를 심었다. 건조하고 뜨거운 지중해의 태양은 비터 오렌지 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특히 스페인의 세비야 지역은 비터 오렌지의 주산지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가로수로 심어진 오렌지 나무들이 도시 전체에 향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유럽인들은 동방에서 온 이 푸른 잎의 향기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향수 경쟁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프랑스 왕실과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의 발달된 향수 문화가 프랑스로 전해졌다. 이때 비터 오렌지 나무의 산물인 네롤리와 페티그레인도 함께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죽 산업이 발달했던 프랑스 그라스 지역에서는 가죽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료를 사용했는데, 페티그레인은 가격 대비 효과가 뛰어난 훌륭한 가죽 향료였다. 네롤리가 너무 비싸서 사용하기 부담스러울 때, 페티그레인은 훌륭한 대체재이자 보완재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그라스 지역을 중심으로 비터 오렌지 재배와 페티그레인 추출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페티그레인은 14세기 헝가리 워터와 17세기 말 등장한 오 드 코롱(쾰른의 물)의 핵심 원료 중 하나가 되었다. 초기의 오 드 코롱 레시피는 로즈마리, 레몬, 베르가못, 네롤리, 그리고 페티그레인을 알코올에 혼합한 것이었다. 여기서 페티그레인은 톡 쏘는 시트러스 향과 부드러운 꽃향기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허브와 우디의 뉘앙스를 담당했다. 이 상쾌하고 가벼운 향수는 무거운 동물성 향료에 지쳐있던 유럽인들을 열광시켰다. 나폴레옹을 비롯한 수많은 명사가 사랑했던 이 향수의 성공 뒤에는 묵묵히 자신의 향기를 내뿜었던 잎사귀, 페티그레인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의학자들은 식물의 성분과 효능을 더욱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그들은 페티그레인이 신경계를 강화하고 우울증을 완화하는 데 탁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당시 유행하던 멜랑콜리(우울질)를 치료하기 위해 페티그레인 오일을 이용한 마사지나 목욕법이 권장되었다. 이는 현대 아로마테라피에서 페티그레인을 천연 항우울제나 불면증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치유의 지혜가 과학적인 관찰과 결합하여 현대적인 용법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풋열매에서 시작하여 무성한 잎사귀로 그 추출의 대상을 옮겨온 페티그레인의 역사는,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고대 아시아의 야생 숲에서 출발해 아랍의 증류기를 거쳐 유럽의 귀족 사회와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이 푸른 잎의 향기는 언제나 치유와 정화의 곁에 있었다. 화려한 네롤리의 그늘에 가려진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 뿌리와 줄기를 지탱하며 묵묵히 자신의 향기를 피워낸 숲의 숨결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페티그레인에서 느끼는 그 싱그럽고도 씁쓸한 향기 속에는,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병든 육체를 씻어주었던 고대와 중세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