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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재 Aug 06. 2024

조각 케이크와 인턴쉽

자하 하디드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 나는 런던의 여성 건축가 자하하디드의 사무소에서 1년간 두 번의 인턴을 했었다. 아마 우리에게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익숙하지 않을까. 첫 출근을 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하하디드 사무소는 런던 보울링 그린레인에 위치해 있다. 낡은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사무실이고 리셉션에 들어서자마자 곡선의 향연이 펼쳐진다. 내가 이후 일했던 사무실들과 다른 점을 이야기해 보자면 정말 사람들이 배우들처럼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보통 건축사들은 세미정장을 입긴 하지만 자하하디드는 모델 에이전시 같았다랄까?



자하 하디드는 곡선, 비정형의 건축을 대표하던 건축가이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설계에 매료되었고 건축, 무대, 보석, 의상, 가구디자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자하하디드의 건축 설계방식은 어떻게 달랐을까? 인턴이었기에 아주 깊은 내막은 모르지만 프로그램, 규모 등 정량적인 접근과는 다르게 지하에서의 작업들은 우선 마치 조각가가 조각하는 듯이 형태를 찾아가고 이후에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팀이 기본적인 초기 형태를 제안하고, 디렉터가 자하하디드와 단독미팅을 하고 그녀의 아이디어와 스케치를 공유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 내가 같이 일했던 디렉터분은 어릴 때 프랭크 게리와 작업을 하던 터키 사람이었는데 정말 불같이 무섭던 사람이었는데도 자하와의 단독미팅은 가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볼 때마다 얼마나 부담감이 컸을지 상상이 간다.


가장 기억에 남던 추억은 2주 차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앞에 두고 모든 직원이 보는 앞에서 디렉터가 “이런 쓰레기 같은 걸 가져올 거면 짐 싸서 당장 나가”라고 샤우팅을 했던 것인데 다들 그 인간 성격 더럽다고 욕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더라


그다음 해 런던에 인턴을 구하다가 하나도 못 구했을 때,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사무소에 무작정 찾아가서 일 시켜달라고 말했을 때 다시 받아준 사람도 이 디렉터였다.

“난 네가 다시 일하고 싶어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웃겨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모두가 일하고 싶어서 포트폴리오를 들고 줄 서던 회사인데 케이크 한판도 아닌 한 조각으로 딜을 하려는 꼬맹이가 얼마나 황당했을지


그런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건축을 아직도 하고 있는 걸 보면 인생사는 요지경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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