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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전략을 읽어라

국제 공모전

by 정현재

프로젝트 A는 대규모 국제공항의 현상설계 공모전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사무소들이 모였고, 각 팀은 저마다의 독창적인 설계안을 통해 경쟁의 장으로 뛰어들었다. 공모지침에서는 공항의 운영 효율성과 실용성을 최적화하기 위해 T자형 배치를 추천했다. 이 배치는 기존 공항 설계에서 오랜 시간 검증된 형태로, 터미널 운영 동선과 항공기의 주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모전의 기본 요구사항에 부합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상위권에 오른 설계안들은 T자형 배치를 따르지 않고, X자형 또는 H자형 배치를 제안했다. 그들은 이러한 형태가 기존의 T자형 구조보다 더 큰 유연성을 제공하며, 공항 이용자들에게는 더 나은 경험을, 운영자들에게는 더욱 직관적인 관리 방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형태를 변화시킨 것처럼 보였지만, 이들은 설계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철저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과 강력한 설득 논리를 심사위원들에게 제시했다. 심사위원들은 지침을 따르는 설계안이 아니라, 지침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한 설계안을 더욱 높이 평가했고, 그 결과 독창성을 내세운 팀들이 상위권에 올랐다.


이 프로젝트는 설계 공모전에서 전략적 사고와 설득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단순히 지침을 충실히 따르는 것만으로는 결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모든 경쟁자의 설계안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들이 제시한 대안적 형태가 가진 잠재적 약점을 면밀히 파악하며,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설계안이 왜 더 나은 선택인지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더불어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설계안에 반영하며 전략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설계 공모전은 단순히 창의적 아이디어의 경쟁장이 아니다. 디자인과 전략이 결합된 설계 과정의 싸움이다. 경쟁 환경을 이해하고, 심사위원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내며, 설계안을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공모지침을 벗어나면서도 설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설득력 있는 데이터와 논리적 전개를 기반으로 심사위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험은 건축 설계가 단순히 아름다움과 기능을 추구하는 영역을 넘어선다는 점을 보여준다. 건축가는 자신이 만든 설계안이 단순히 구조적 완성도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전략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설계안은 곧 메시지다. 그것이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프로젝트 A는 이를 상기시키는 중요한 사례로, 설계 공모전의 본질은 단순히 디자인 아이디어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과 설득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결합한 통합적 접근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결론적으로, 공모전은 단순한 설계의 경쟁이 아닌 전략과 설계가 결합된 치열한 전장이다. 적의 전략을 읽고, 그들의 약점을 공략하며, 우리 설계안의 강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공모전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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