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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속에서 다양함의 가치를 찾다

by 정현재

초고층 빌딩과 문화·상업 시설이 복합된 프로젝트 T는 단순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해당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정의하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거대한 스케일에서, 우리는 건축이 단순히 개별적인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믿었다.


팀이 내놓은 디자인은 바다를 횡단하는 보트 마스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구조물, 강렬하면서도 유연하게 공간을 조율하는 방식.

우리는 이 철학을 반영해, 거대한 캐노피 아래 여러 개의 매스(Massing)를 배치하는 전략을 세웠다.


각 건물은 개별적인 기능을 하면서도, 하나의 유기적인 프레임워크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형태였다. 이 방식은 프로젝트를 하나의 강한 개념으로 묶는 전략이었다. 설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일관된 디자인 언어였다. 비례를 유지하고, 재료의 연속성을 고려하며, 공간 간의 연결성과 흐름을 강조했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단순한 개별 건물들의 조합이 아닌, 도시적인 조형물이자 하나의 거대한 건축적 경험이었다. 우리는 이 전략이 프로젝트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발표 당일,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팀원들은 마지막까지 디테일을 점검했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완성도 높게 정리되었다. 모형은 매끄럽게 구현되었고,

렌더링은 그 스케일을 담아냈으며, 다이어그램은 프로젝트의 철학과 전략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우리는 설계의 명확성, 공간적 완성도, 도시와의 관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구성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미묘했다.


“일관된 디자인 언어가 돋보이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모든 건물을 하나의 설계사가 동일한 방식으로 디자인하기 어렵다.”


“각 건물이 개별적으로 작동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피드백이 프로젝트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접근법과 전혀 다른 시선이었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하나의 강한 개념으로 묶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각 건물의 독립성과 개별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어내려 했던 것과 달리, 다른 팀들은 각 건물이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개별 건물마다 형태적 차별화를 두고, 전체적인 조화보다 자율적인 분배 구조를 강조하는 방식.


이러한 방식이 반드시 더 나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접근 방식이 달랐다는 점이다.


완벽한 조화와 개별적 독립성 사이에서 다양성과 자율성을 강조한 경쟁사들의 디자인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건축에서 강한 개념과 일관된 언어는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그러나 규모가 커질수록, 다른 방식의 접근도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초대형 프로젝트에서는, 각 건물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관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각 공간이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전략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의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통해 프로젝트를 통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개별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결국 건축에서 정답이란 없다. 맥락과 프로젝트의 성격, 목표, 협력 관계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질 뿐이다.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통일성이 핵심이 되고,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다양성이 강점이 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전략의 차이이며,

설계팀이 어떤 방향을 설정하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일관성이라는 무기로 접근했다. 다른 팀들은 다양성이라는 무기로 접근했다. 결과는? 그것은 프로젝트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건축은 단순한 형태의 완성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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