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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대신 글

프롤로그

by 노을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픔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아기일 때, 나는 아파도 울지 않는 아기였다고 한다. 한 번은 열이 높아 부모님이 감기약을 먹이고 경과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계속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른 이상은 없었기에 해열제를 계속 먹이다가 문득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고막이 크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감기에 걸리면 귀가 먼저 아프고, 기압 차를 잘 견디지 못해 비행기를 타면 울기도 한다. 그날 내가 울었다면, 그래서 병원에 갔다면 나는 지금 덜 아플 수 있었을까?


커서도 나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교통사고 이후 매년 나는 친구들에게 내 교통사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움이 필요해서, 혹은 왜 1년 늦게 학교에 들어갔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사고가 있어서 팔이 불편하다고, 병원에 1년간 입원했었다고 말이다. 나는 온전히 아픔에서 동떨어진 채,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말한다. 그러면 오히려 친구들은 나 대신에 화를 내고,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만약 내가 울면서 말했다면 지금보다 내 장애에 대해 더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심했을 때, 나는 친구와 전화만 하면 울기만 했었다. 단 한 번도 그 친구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다. 울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눈물만 나왔다. 다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듣기만 했던 나는 그 친구를 만나러 가서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했다. 지금 이러한 증상들이 있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런 아픔이 있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10년 동안 친구였는데, 나는 너에 대해서 한 개도 몰랐던 것 같다고 말이다. 만약 내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했다면, 나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나는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다. 말을 안 하는 것인지, 못 하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나마 이제는 조금 빨리 힘들었던 이야기를, 아팠던 이야기를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 덕분에 종종 사람들이 오해하기도 한다. 장난친다고 생각하기도, 자신을 떠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도대체 힘들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교육과정 속에서 나는 배우지 못했다. 말하는 방법을,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은 읽으면 말이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말하지 못하기에, 글을 쓴다.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만, 종이에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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