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과 특이함 사이
우리나라의 장애인 중 약 80% 정도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래도 내가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면, 조금 어린 나이에, 그리고 타인의 실수에 의해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각자가 다른 이유로 장애를 갖게 되겠지만, 나의 경우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전의 나는 장애를 얻은 순간 내 삶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던 미래에 장애는 없었으니까. 장애라는 페널티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삶이 아니라 무엇을 해도 실패로 가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원했던, 꿈꿨던 미래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장애로 인하여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얻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나에게는 성취이고, 극복이라는 점이다. 사실 누구나 특별해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특별해지기 전에, 특이해지면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마치 나처럼.
2007년 4월 5일 목요일, 초등학생 5학년 때 사고를 당했다. 어제와 다름없고, 내일과 다름없을 그러한 일상을 보내던 중에. 그러나 조금 이상함을 예감한 하루였다. 가끔, 내가 그 신호를 알아차렸다면 사고를 안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기도 했다. 그 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학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과 같이 놀고, 공부하는 것을 즐겼던 내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학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되겠냐는 질문을 했고 당연히 거절당했다. 반항하지 못한 나는 일단 그대로 학교를 갔다. 초등학생인 나는 학교를 끝내고 운동장을 건너서 정문을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아차 싶었다. 학원 교재를 두고 온 것이었다. 머뭇거렸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원차를 타고 시골에서만 볼 수 있던,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슈퍼마켓, 버스정류장, 우리 집과 주유소, 그 반대편의 남한강, 집 옆의 교회, 모텔, 심지어 고깃집까지 지나가고, 허허벌판 논과 밭의 풍경을 너무 익숙하게 보았다. 언제까지나 계속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님을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그러던 와중에,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찰나였다. 내 오른팔이 절단된 순간, 1초도 되지 않았다. 무엇이 나의 팔을 절단시켰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한순간의 꿈같았다. 아무런 감각도, 고통도, 눈물도 없었다. 너무 놀라면 고통을 못 느낀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순간이었다. 놀라움에 정신이 없던 나는 겨우겨우 친구들의 울음소리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차 안은 친구들의 울음과 비명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사고 직후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기사님은 졸음운전을 하셨고, 그로 인해 중앙선을 침범하였다. 하필 그 순간 레미콘 차량이 반대 차선에서 오고 있었고, 결국 피하지 못하고 조금 부딪쳤다. 부딪치자마자 기사님은 잠에서 깨 핸들을 반대방향으로 틀었다. 부딪친 순간 차 창문의 유리는 깨졌고, 핸들을 돌리는 순간 내 몸은 깨진 창문 쪽으로 던져졌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서. 그러면서 깨진 창문 유리는 내 팔을 절단시켰고, 그대로 절단된 오른팔은 차도로 떨어졌다. 이 모든 일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 핸드폰을 빌려 이 상황에 대해 말을 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너무나도 정신이 멀쩡했다. 팔이 분명 없는데, 팔이 있는 느낌이 나는 것 빼고는. 그래서 내 머릿속의 팔을 움직여 보았다. 어깨가 움직였다. 그 순간 나는 내 뼈와 살과 피를 보았다. 그러더니 잠깐 통증도 함께 느껴졌다. 그때를 빼고, 병원에 가는 길에 나는 계속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현실성이 없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혹은 꿈이라고 생각한 건가……. 게다가 아프지 않아서 더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당연히 두 발이 멀쩡하니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갔다. 모두가 나를 놀랍게 쳐다보더라. 응급처치는 내가 스스로 눕고 나서 시작되었다.
응급처치를 받고 있을 때 부모님이 도착했다. 나의 오른팔을 들고서. 아빠의 주유소 외투로 감싸져 있던 나의 오른팔. 그대로 절단된 팔 역시 얼음에 넣어두는 응급조치가 끝나고 누워있는 나와 내 팔은 그렇게 분리된 채로 구급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도착한 신경 접합 전문 수술 병원. 운이 좋게 음식을 먹은 지 시간이 꽤 지났고, 원장님이 계셔서 수술을 바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제야 숨겨왔던 고민을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나을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의사는 나에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그 말을 믿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 말을 믿었다. 그래야만 수술을 받는 이유가, 살아갈 이유가 생기니까. 차가운 냄새가 가득한 수술실에서도 나는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슬픈 진실,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수술을 마치고 눈을 떴다.
2007년 4월, 12살의 나이에 나는 그 날 아침의 나로 평생 돌아갈 수 없는 내가 되어버렸다. 나를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