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요구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당신 주변을 살펴봐라. 대부분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친구는 없을 것이다. 장애인 가족이 있거나, 있었거나 하지 않은 이상, 장애를 가진 사람은 저 멀리에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과 같이 말이다.
내가 비장애인이었을 때 발달장애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너무 어릴 적이라 그 친구의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릴 적 나는 그 친구와 꽤나 자주 어울렸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자면 많이 도움을 주었다. 그 당시에는 도움을 주는 게 번거롭다거나, 힘들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도와줄 수 있어서 도움을 주었고, 그것이 기쁘거나 뿌듯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의 부모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연필 깎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선물을 받으면서 그저 선물이라 기뻤다. 도와준 대가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은 장애인이 된 나에게 여러 번 곱씹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이 선물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고마웠을까? 어릴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 부모의 마음을 말이다. 조건 없는 호의의 고마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당시 정확히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마음가짐은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마음가짐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다. 때론 사람들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도 실수할 때가 있지만, 어렸던 나는 그 실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여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확신은 깨졌다. 친구가 내민 호의와 배려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 친구로서는 걱정이 돼서 그런 것임을 분명히 알지만, 내가 그 사소한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나는 속상했고,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때 깨달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했는지를. 장애인이 되어보니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 것을 보면서.
장애인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특히나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도와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당신은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장애를 가진 본인뿐이다. 가족조차도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 무엇이 불편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저 어떤 일을 하기 힘들 때, 벅찰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이야기해달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언제든 가능하다면, 때로는 조금 투덜대더라도, 귀찮더라도 네가 더 소중하니까, 도와주겠다는 말과 그 진심이면 나는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움을 요청하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일까? 한두 번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팔이 부러진 아이에게 팔이 나을 때까지 가방을 들어주는 것은 힘들어도 할 수 있다. 힘들어도 끝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 가방을 들어주는 것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사소한 일이라도 꾸준한 도움을 주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계속 부탁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을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바라기에는 더욱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부모는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작지만 무엇이라도 선물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타인이 나에게 꾸준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실 나조차도 타인에게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도움을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여렸던 나는 옛날의 그 마음의 기대치만큼 못 미칠 때마다 실망하면서, 점점 지쳐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오히려 이유 없는 호의가 더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할 때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실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와주겠다는 진심 어린 말을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나는 매일을 살아간다. 안 하는 일은 있어도 장애로 인하여 못 하는 일은 없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으면서, 내 인생의 최대의 난제다.
다행히 나는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쌓아나갔지만, 장애인으로서 흔히 받는 상처를 받고 처음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내 장애만 가지고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충분히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아이들은 미성숙했고, 어려서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만으로도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탓하게 된다. 세상이 무서워지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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