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은 처음 들어봤어요.
신경증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스스로 그저 우울증 환자이자, 정신증의 환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가 겪은 일들은 우울증에서 그치기에는 설명이 부족했고, 정신증이라 지칭하기에 너무 광범위했다. 그러다 알게 된 단어가 신경증이었다. 신경증은 현실 판단력에 큰 문제가 없으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여러 가지 주관적인 불편함을 느끼거나, 감정조절, 충동조절이 힘들고, 쉽게 불안해지는 것을 지칭한다. 우리가 들어본 단어들, PTSD, 우울증, 공황장애, 그 외의 기타 불안장애 등을 신경증이라고 한다. 정신증과는 다르나, 흔히 정신증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신경증이라고 본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경증을 앓고 산다. 다만 신경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고, 그저 스트레스로 인한 잠깐의 증상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정기간 이상 지속된다면,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면, 그것은 신경증일 확률이 높다.
신경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쉽고, 빠른 효과를 보여주는 것은 약이다. 약만 먹어도 대부분이 증상들이 완화되므로 원인을 없애는 것은 아니나, 결과를 없앨 수는 있는 수단이다. 정신증의 경우에는 약이 필수적이다. 약 이외의 것은 거의 효과가 없거나, 약을 기반으로 다른 치료를 해야 한다. 신경증 환자들도 사실 상담만으로는 증상이 드라마틱하게 완화되기 쉽지 않다. 우울증 등의 신경증도 호르몬의 조절을 의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경증에 해당하는 호르몬만 조절한다면 충분히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 간다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부담감이 큰일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병원에 간다는 것을 적응하는데 심리상담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등을 전전하면서 부정하다가 결국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갔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가 정신과를 다니는 것을 볼까 봐 두려웠다. 정신증이 걸린 사람처럼 보일까 봐. 정신증임을 나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봐. 그들의 시선이 폭력으로 다가올까 봐 걱정했다. 약을 타기 위해 병원을 간다는 것을 당당히 밝히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더더욱 이야기하지 못했다.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보다도, 가족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무서웠다. 당연히 나는 약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병원을 계속 다니겠다는 행동이었다. 내가 병원에 가는 것이 가족에게 알려졌을 때가 돼서야 나는 약을 꾸준히 먹었다.
사실 약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깨닫는데, 나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팔이 부러지면 깁스를 몇 달간 하다가 푸는 것처럼, 그저 치료가 필요한 것뿐이다. 그것이 물리적 외상이 아닌 정신적 외상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외상이 아니라고, 눈에 보이는 증상을 만들어낼 때까지 놔두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해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학대했다.
마지막으로 극도의 상황이 오기 전에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고 싶다. 나는 극단적 선택 전에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것은 휴식이 아니었다. 여기서 말하는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일도, 생각도, 취미도, 여행도 하지 않고 지내라는 것이다. 그저 살기 위해 먹고, 자는 등의 본능적인 행동만 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무의미하다고, 무기력한 삶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업은 특히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하다. 과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당장 현실에 살아야 하고, 많은 외부의 자극이 있어, 생각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필요하다. 나도 생각이 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야 할 정도다. 결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내가 생각을 멈췄던 시기가 있다. 첫 극단적 선택 이후였다. 정확히는 생각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다행히 억지로 무엇인가를 생각해낼 필요도 없고, 무엇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시간에 나를 맡기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재미없고, 지루했고, 무기력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또다시 무엇인가 할 에너지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회복기까지 절대로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고, 실천해보아도 좋다. 이것도 적절한 치료가 될 것이다.
결국 적절한 치료가 없는 채로, 계속 힘든 상황들이 반복된다면 신경증에 걸린 사람들은, 적어도 나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고 꿈꾼다. 자신의 어려움은 해결 불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죽음을 꿈꾸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죽음이 주는 물리적 고통이라는 것에서 매번 막혔다. 나는 최대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바랐다. 죽음이라는 것에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무엇이 되었건 극단적 선택의 방법 중 고통 없는 방법은 없다. 죽음을 꿈꾸는 이들은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오랜 기간 생각해보았고, 극단적 선택도 해보았지만, 나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했다. 그 어떤 방법도 고통을 느끼지 않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노력했다. 그 덕에 나의 기억은 지워졌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 나는 괴로워했을 것이다. 극단적 선택은 그 고통을 감내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실행된다. 그 순간 내 곁에 아무도 없다면, 그 실행은 죽음으로 다가설 확률이 높다. 당신의 병이 신경증이든, 정신증이든.
그러니 신경증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당신이 신경증에 걸렸는지, 아니면 그저 잠깐의 고통과 힘듦인 것인지. 당신이 신경증에 걸렸다면 그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점점 심해지면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에, 당신은 그런 것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신경증이라고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히도 신경증은 난치병이지, 불치병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