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치료 – 개인 심리상담
나에게는 심리상담은 하고 싶지만,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사실 속된 말로 미친 사람이나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상담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궁금하였다. 개인 상담은 두려웠고, 때마침 집단 상담을 모집하고 있어, 지원했다. 그 집단상담의 주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상담사를 알아보는 것과 상담에 관한 어려움 극복이 내 주 이슈였다. 그렇게 상담에 익숙해질 때 개인 상담을 신청했다. 심리상담은 나를 우울증에서 꺼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처음 마주하는 내 감정과 상태가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진행된 개인상담은 오히려 더 난관으로 빠졌고, 결국 우울증의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첫 상담의 상처만 받은 채 리퍼(상담사 교체)당한 나는 그렇게 하0실 상담사를 만났다. 전 상담의 상처로 인하여 마음의 문은 더 크고 단단해져 버렸다. 게다가 감정을 휘둘리지 않기 위해 항상 억눌러야만 했고, 이전처럼 드러내면 외면당하는 것이 되었다. 나도 느끼기 싫어 외면한 감정들을 타인에게 공감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제발 공감해달라는 이중적인 생각을 했다. 저 상담사만은 다를 것이라고, 나를 이해해줄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런 이중적인 생각은 너무나 괴로웠다. 내가 공감받고자 한 것은 장애로 인한 어려움과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지 않은, 팔을 다친 경험이 없는, 상담사들이 나의 고통과 불편함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왜 다쳐 본 경험이 없냐고, 왜 공감하지 못하냐고 따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상담사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이해한다고 말한 하0실 상담사는 조금 더 많이 아파야 했던, 난치병으로 인하여 아파본 경험이 있던, 동감을 해주었다. 정확히는 아픔과 고통에 관한 동감이었다. 나는 상담사에게도 공감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나는 지쳤다. 휴학을 결심했던 나는 마지막 회차를 앞두고 생각에 잠겼었다. 처음으로 마음속에 묵히고 묵힌 말을 그대로 꺼냈다. 나는 화가 났었고 따지듯이 이야기했다.
“저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눈으로, 혹은 눈을 감고 지내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그렇게 시각장애인을 공감해보려고 했어요. 선생님은 단 한 번이라도 저를 이해하기 위해서 한쪽 팔만으로 하루를, 아니 단 1시간이라도 지내본 적이 있나요? 그렇지 않고서 저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으신가요?”
표정으로, 말투로는 상담사가 충격을 받았는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어떻게 보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상담사는 꼭 그렇지 않아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예전에도, 지금도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해받지 못한 채로 학교를 떠났다. 그러고 나서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또 다른 상담을 받고, 그렇게 1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은 학교에서 나는 상담을 재개했다. 나는 다시 시작된 상담 초기에 처음으로 공감을 받았다. 아주 단순한 경험 하나로.
우연히 상담사는 그 마지막 회차 이후 팔을 다치는 경험을 했고, 한 달간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야 느꼈다고 했다. 내 장애에 대한, 내 불편함에 대한 것을. 나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공감은 둘째치고 이해 못했던 것 같다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말들도 많았다고. 처음으로 비장애인에게, 상담사에게 장애를 공감받은, 치유 받은 경험이었다. 나에게 미안하다는 그 말이, 이제 이 상담실이라는 공간과 상담사와 같이 있는 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로 들렸다. 부모님조차도 물리적인 도움만이 해결책이라고 믿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을 얻은 날이었다. 상담사는 공감받고 싶다는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상담사가 팔을 다친 것도 우연이었다. 내가 던진 말에 상담이 끝나고서 바쁜 현실에 치여 다시 생각해보거나, 실현해볼 생각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자의적 경험이었다면 더 많은 공감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 욕심이다. 내가 예상치 못하게 장애를 갖게 되어 생각했던 것처럼, 그저 상담사도 우연히 벌어진 일에서 얻은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일을 겪고서 내 말이 떠올랐다는 것이 나는 고마웠다. 불편함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 굳게 닫혔던 나의 마음의 문을 열어버렸다.
장애를 가진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이제는 의사들도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 가능성이 너무나도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팔이 낫기를 원했다. 그래서 의문을 가지고 상담을 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상담이 아니라 병원 치료이지 않을까?’
항상 나는 내가 다치지 않았을 때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상담으로써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상담밖에 없어서, 상담했었다. 아니었다. 나는 과거를 돌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힘들게 살아온 10년이라는 세월이 후회와 탄식만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살아온 내가 뿌듯했고, 자신감이 있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그 긴 기간 동안 살아내느라 그저 지쳤을 뿐이었다. 나는 너무 어리고, 여렸고, 삶에서의 장애는 너무나도 거대했고, 무거웠다. 그래서 어쩌면 낫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상담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놓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