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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정신 분석

심리 치료 – 심리 서사 분석

by 노을

치료를 받고자 했으나 두려워 잠시 미뤄둔 최면치료에 대해 찾아보았다. 조금 더 무의식의 상태라면 내가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감정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가입했던 카페에 결국 치료를 받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그렇게 만난 분석가는 윤지원 선생님이었다.



첫 만남부터 강렬했다. 생각보다 큰 키에 나는 조금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잠시, 첫 세션(회기)이 시작되었다. 다른 상담사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10회차 이상을 이야기하던 내용들을 첫 세션 만에 끝냈다. 글을 통해 전반적인 이야기를 했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다. 나는 오랫동안 치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편안해졌다. 그렇게 멈췄던 나의 치료는 다시금 시작되었다.


그의 솔직함과 뛰어난 이해력은 치료를 꾸준히 받을 수 있었던 계기였다. 그의 세션은 일반적인 심리상담이나 정신분석과는 달랐다. 적어도 실패를 실패라고 말하며, 천천히 알아가자는 말이 아닌 매번 오늘이 마지막 세션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나에게 인상 깊었다. 그런 세션에서 나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꿨으나, 심리 서사 분석에서도 그러지는 못했다. 지금도 오랜 시간 정체되어 있을 때도, 상태가 안 좋아질 때도 많았다. 상담에 대한 저항이 강했던 터라, 아니 어쩌면 사람에 대한 저항이 강했던 터라, 나의 감정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다행히, 내 행동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타인에게 하는 행동, 말, 생각 등의 뿌리를 발견했다.


세션을 진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어쩌면 교통사고보다 더 오래전에 나는 이미 상처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묻은 과거들, 어쩌면 그 기억이 나의 주된 문제에서 기인했던 기억이라 지웠던 것이 아닐까? 나는 교통사고의 순간을 그림이나 글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삶의 흐름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잃어버린 것은 그 이전의 나에 대한 기억이었다. 오빠와의 특정한 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치 그 기억 빼고는 어떤 기억도 없어, 그 특정 사건이 오기억이라고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꼭 나는 학원 차에서, 12살부터 삶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찾고 싶지만,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는 무서운 기억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먼 과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증상이 매우 심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내담자 중에서 Top 3안에 든다고 했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증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소한 증상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괴로워했다. 하지만 저 말을 들으면서 누구라도 이 증상들을 버티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예상을 하니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러한 내 증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증상들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다면, 하고 싶지 않다면, 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싶지 않아 자차 운전을 했고, 아빠를 보기 힘들어서 병원에 가지 않게 되었고, 공부가 하기 싫어 계속 휴학을 했다. 그때부터 스스로 과도한 노출 치료를 중단시켰다. 증상은 그렇게 사그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더 흐르고, 증상이 많이 완화되자 윤지원 선생님은 어린 시절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충분한 공감과 지지, 쉽게 말하면 사랑이 필요하다고 여기셨다. 하지만 전이를 걱정하셨던 것 같다. 내담자가 치료받다가 상담사에게 특정 감정을 느끼는 것을 전이라고 한다. (내담자가 이성애자라는 가정 하에) 상담사가 이성일 경우에는 그 과정이 더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내담자는 전이를 사랑이라고 여겨 상담사와 내담자 모두 힘들어지기도 한다. 윤지원 선생님은 그 과정이 너무 힘든 과정이기도 하고, 그렇게 나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셨다. 사실 나는 이성이기에, 윤지원 선생님에게 공감을 받고 있으나, 의지하기 더 어려웠다. 그래서 전이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엄마로부터의 지지였다. 나는 이미 자살시도의 경험과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전적이 있었기에, 안전하게 다른 여성 분석가를 소개해주셨다. 성별이 달라 채워 줄 수 없는 부분을 분석가도 내담자도 충분히 인지하고, 천천히 리퍼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분석가인 신0아 선생님을 만났다.


이상하게 낯선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전되어 갔다. 공감을 받았던 상담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지지를 받아보는 첫 상담이었다. 신0아 선생님은 항상 힘든 일이 있다면 연락하라고 이야기하신다. 사실 그때의 나의 상태는 일주일 중 8일이 힘들다고 말할 정도였고, 결국 나는 상담 중간중간 연락을 했고, 연락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언제든 나의 감정과 상태를 신경 써준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었다. 일주일을 견디고, 참고, 무뎌져야만 했던 내가 조금은 감정을 이야기하고, 돌봐주고, 해체할 수 있도록 계속된 도움을 주셨다. 언제나 의존을 먼저 걱정하던 내가, 조금은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나는 사람에게 의지하며, 천천히 일어날 수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로부터 지지를 받아 성장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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