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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가 보는 내담자

윤0원 분석가, 신0아 분석가, 하0실 상담사

by 노을

- 윤0원 분석가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원형씨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이메일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직업상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과 문자를 받는 터라, 시간 관계상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읽지 못할 때가 많다. 원형씨의 메일 또한 처음에는 그렇게 훑어보는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두세 번을 반복해서 천천히 원형씨가 보낸 메일을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가독성이 나쁜 것도 아니고,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지만...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내담자들이 보내는 메일이 늘 그러하듯이, 원형씨의 메일 역시 그 내용이 좋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오빠로부터의 성추행, 어린 시절 팔의 절단, 교통수단에 대한 공황.... 그런데 내가 그 메일을 서너 번 반복해서 읽은 이유는 원형씨가 채워 넣은 내용에 있지 않았다. 그 내용을 담고 있는 문체였다. 그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연들이 매우 담담하고 청아한 문장으로 쓰여 있었다. 마치 피천득의 수필의 일부를 읽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넋두리나 감정 표현 없이, 있었던 사실들만 간결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만난 원형씨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겪은 아이러니한 고통과 슬픔은, 사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깊고 선명하고 아픈 것이었지만, 그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마치 제 3자의 일처럼, 혹은 어떤 문학작품을 읽듯이 감정을 섞지 않고 자신의 슬픔을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녀는 자신이 울었을 때, 그 울음이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봐 눈물조차 잘 흘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절제된 감정, 그리고 그 절제된 감정을 바탕으로 표현되는 특유의 그 글과 말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녀 특유의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가 이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겪은 아픔을 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큼직큼직한 것만 들어서 이야기를 하려 해도 마음이 아려온다. 하물며 그 아픔을 직접 겪은 그녀 자신은 어떠할까.



어린 시절의 원형씨는 어머니를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가정 내에서 낮은 지위를 가진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와의 동일시에 실패한 딸은 어머니를 미워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도리어 어머니를 구원하려고 한다. 그 구원의 열망이 얼마나 컸던지 원형씨가 오빠에게 맞을 때에도,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할 때에도, 심지어 원형씨 인생의 가장 큰 불행인... 학원 버스를 타고 가다가 팔이 절단되었을 때에도 그녀에게는 그녀 본인의 아픔보다 엄마의 아픔이 더 중요하고 더 크게 작동한다. 이러한 어머니에 대한 구원자적 열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에 그녀를 신경증적 고통에 빠뜨리는 하나의 축이 된다.


그 이후에 원형씨의 부모님은 학원차를 운전했던 운전기사를 일방적으로 용서한다. 원형씨의 이해나 용서 없이. 이때 원형씨는 최초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픈 사람은 있는데 그 아픔에 책임을 질 사람은 없는. 원형씨는 온전하지 않은 팔과 운전기사에 대한 미움과 부모님의 섣부른 용서에 대한 억울함을 모두 다 온전히 미래를 향한 노력으로 만든다. 이 때도 역시 엄마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 팔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아프지 않은 것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한다. 그리고 결국 원하는 대학으로 입학하지만 그 대학에서 신경증은 발병하고 만다. 공황증의 형태로.


아마 그 이상의 노력을 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웠을 것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팔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은 어머니를 구원할 수 없고, 나아가 어머니를 구원해야 될 이유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공황증이었으리라.


공황으로 시작된 신경증은 점점 그 범위를 확장시켜갔고, 그 과정에서 고통과 좌절을 견디지 못한 원형씨는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원형씨는 다행히 그 자살기도에서 살아남지만,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마치 거짓말처럼 아버지는 십여 년 전의 원형씨가 그랬던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팔을 재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원형씨는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또 크나큰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감정이 빠져나갈 길을 잃고 만 것이다. 원형씨가 아버지에게 해야 할 유일한 말은 “재활을 열심히 하라”는 말 뿐이었지만, 원형씨는 이미 재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인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고, “재활을 열심히 하라”는 그 말이 얼마나 큰 희망고문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아버지에게 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 말 외에는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상황, 원형씨는 자기 때문에 병상에 눕게 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재활하라”는 말을 들으며 느꼈던 과거의 고통, 그리고 그 과거 자신의 상황과 거의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아버지에게 자신이 겪었던 그대로 그 말을 되돌려 줘야 하는 지독한 딜레마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딜레마 속에서 원형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아버지에게 가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어머니에 대한 절대복종이라고 할 만큼 어머니에 대한 강한 구원자적 욕망을 갖고 있는 원형씨에게는 “병원에 가라”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 또한 거역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대체 그녀는 이 고통의 감옥 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녀와 무수한 날들을 함께 정신분석을 했다. 처음에는 눈을 감고 연상을 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던 그녀였지만, 나중에는 함께 웃기도 했고, 또 함께 울기도 하면서 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수많은 사연들을, 수많은 아픔들을, 크고 또렷한 딜레마들을 함께 우리는 알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증상 또한 조금씩은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혼자서 어린 시절 교통사고 현장에 다시 가보기도 하고, 울릉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자전거로 유럽을 달리는 구상을 하고, 학원 강사를 하기도 하는 등 자신의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정신분석가로서 내게 가장 기억나는 그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수많은 모습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그녀는 ‘늘 스스로 최면 의자의 레버를 당기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녀는 오른손이 불편하고 안타깝게도 상담센터의 최면 의자의 레버는 오른쪽에 있었다.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정신분석에 들어갈 때 최면 의자에 앉아야 하는데, 그녀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내담자들은 내가 그 레버를 당겨서 그들을 눕혀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내가 그 레버를 당겨주기를 기다린 적이 없다. 가장 아팠던 날에도, 가장 슬펐던 날에도, 가장 힘없었던 날에도... 그녀는 스스로 그 레버를 당겼다.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그것을 어쩌면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그녀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특성 때문에 그녀가 지금 아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한 면보다 다른 면을 더 보고 싶다.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그녀는 여전히 그녀 삶의 주인공일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로 많은 것에 도전하고 많은 것을 이뤄나가는 사람인 이상... 그녀는 결국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아니 행복을 쟁취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녀를 기억하고 싶다.



- 신0아 분석가

어둠이 빨라지는 초겨울의 토요일, 원형씨를 처음 만났다. 돌이켜보면 그녀와의 세션들은 마음 뭉클하고도 슬픈 여정이었다. 상담의 첫 만남은 이래저래 긴장된다. 어떤 내담자 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녀와의 첫 대면이 어떻게 진행 되어질까 긴장되기도 한다.


“상대의 아픔을 내 안에서 느낀다.”


상담을 업으로 삼고 있는 선생님들께 늘 듣는 이야기이다. 마음의 치유는 공감에서 시작되며, 공감이란 공통의 감정을 서로 나누고 느끼는데서 시작된다. 상담사는 내담자의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읽을 수 없다면 공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공명할 수 없다면 경청하고 그의 이야기에 젖을 수라도 있어야 한다.



그날 오후 나는 원형씨 인계 자료를 읽고 있었다. 자료 안에서 원형이라는 사람이 감내해야 했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이겨내고자 했던 강함이 전해져 왔다. 그녀의 이야기는 아픔을 자신의 선에서 끊어내려고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전가하지 않고 그들을 지켜주려고 했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들이었다. 자료를 읽으며 그녀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노력들이 더 이상 갈 곳을 잃게 된 막다른 골목에서 조용히 잘못된 선택을 했던 그녀를 보았을 때, 마음이 저려왔다.


찬바람과 어둠이 한께 한 그날 저녁, 그녀를 처음 만났다. 예상대로 지극히 평범하고 순수한, 그리고 청초한 민낯의 여대생 원형씨. 하지만 이미 사전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평범한 그녀 안에 얼마나 강인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훗날 완성될 그녀가, 그녀만이 해낼 수 있는 찬란한 의미를 위해 그간의 시간들이 얼마나 가혹하고 혹독한 담금질들이었을까. 데자뷰처럼 여러 사건들이 그녀 얼굴 뒤로 스치고 지나간다.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한 팔의 절단. 그리고 이어진 심리적 충격들. 성적인 이슈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하여 아픔을 자신 속으로 묵묵히 덮었던 우직함. 존경스러운 강인함. 하지만 그 강인함으로 인한 또 다른 상처들... 아픈 감정들을 느끼지 않음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음을 나는 그녀의 독특한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상담 여정은 딱딱하게 굳고 외면했었던 지난 감정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그 과정은 때론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지난날의 아픈 감정들이다. 나와 그녀는 그 감정들을 하나씩 하나씩 녹여갔다. 그 과정들은 때론 슬프고, 때론 매우 아팠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지난 사건들. 그래서 몇 년간 얼려둘 수밖에 없었던 그 감정들을 다시금 녹여 직면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기어이 소화해낸다.


강한 사람이다.



사실 원형씨는 고통을 안고도 그간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었다. 또한 대면하기에 아픈 과거의 사건 사고들마저도 내면 깊숙이 직시하고자 하는 용기와 배짱도 있는 사람이다. 원형씨는 현재 한국00대학교에 재학 중한 재원이다. 교직을 꿈꾸는 학생이라면 단연 최우선 순위로 입학을 꿈꾸는 학교일 것이다. 그녀는 상담 중에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있다. “이 땅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꿈, 희망, 그리고 살만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어 선생님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진정으로 멋진 교사 혹은 교사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성취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살게 하고, 많은 것들을 이루게 해 주었던 자신의 심리 서사마저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이다. 심리 서사의 수정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고, 심리적으로 고단한 과정이다. 어쩌면 그녀가 여태껏 지나온 어려움 이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도 꿋꿋이 전진한다. 흔들림은 있어도 후퇴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곧 완성된 자신을 만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게 될 아름다운 그녀를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기다린다.



- 하0실 상담사

'만나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누군가 가거나 와서 둘이 서로 마주 보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 나의 내담자를 만났다. 우린 둘이 되었고... 우리의 만남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매주 또는 매일 상담실에 와준 내담자와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상담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린 34번째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나의 얼굴 표정, 몸짓, 행동 하나 하나 서로의 거울이 되어 비춰주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으세요?” 내담자가 나에게 자주 물었던 질문이다. 나는 내가 만난 내담자를 통해 ‘아... 내담자 또한 상담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 할 수 있겠구나~’를 알게 되었다. 나의 생각과 느낌을 궁금해하는 내담자였다. 난 어쩌면 상담사만 내담자를 궁금해하고 느끼길 원하는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표정과 작은 몸짓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무엇을 느끼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때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 어려워 자꾸 눈이 바닥으로, 천장으로 향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우린 서로를 마주 보고 있지 못하는 것이고, 이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데 말이다. 아직도 완전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아니 완전한 답은 없겠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이것을 한 사람만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담자가 상담사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어렵다면 상담사도 그러할 것이고, 상담사가 내담자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어렵다면 내담자도 그러할 것이다. 상담을 하는 동안 우린 적어도 똑같진 않아도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고 서로를 만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마주함의 의미가 긍정과 부정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설명될 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상담의 관계가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고, ‘우리’의 상담이 ‘서로를 마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유이지 아닐까 싶다.



나의 내담자는 내가 상담사로 살아감에 있어서 놓치면 안 될 많은 것들을 알려준 나의 스승과도 같다. 상담이론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수많은 경험들... 함께 울며 웃었던 시간들... 우리의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 걱정되어, 꼭 지키기 위해 애썼던 약속들... 나에게 진정한 공감이 무엇인지, 내담자를 정말 만나고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나의 스승이다. “미안하다” “고맙다” 내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게 도와준 나의 스승이다. 우린 세상을 살면서 미안할 땐 미안하다고, 고마울 땐 상담사가 고맙다고, 표현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린 생각보다 이를 실천하며 살지 못할 때가 많다.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말이다. 상담 안에서도 동일했던 것 같다. ‘상담사로서의 전문성이 떨어지진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말하지 못했던 말들... 이젠 스승과도 같은 나의 내담자를 통해 할 수 있게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진심으로... 말해본다.



심리 치료를 하는 윤0원 분석가, 신0아 분석가, 하0실 상담사님이 내담자인 저를 보고, 만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느낀 바를 솔직히 적어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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