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남자의 30시간>, <다가오는 말들>
우리는 책을 참 쉽게 접할 수 있다. 책을 사서 읽거나, 도서관에서 읽는 것에서 벗어나서 언젠가부터 대형서점에서 책을 읽는 것이 문화가 되어버렸다.
팔을 다치고 나서부터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방과 후에 병원을 가지 않고 학교에서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독서였다. 그래서 종종 담임선생님도 나에게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었다. 주인공에 몰입하면서 내 문제를 잊어갔다. 때로는 주인공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조차 책을 보며 꿈을 키워 나갔다. 내 미래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었으나, 멘토가 필요했으나, 그 어디서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초등학생 시절 책만 읽었다.
그것도 잠시, 입시를 앞두면서 나는 책과 멀어졌다. 하지만 입시를 끝내고도 책과 멀어졌다. 흥미가 가지 않았고, 다시는 책을 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책을 집었다. 이유는 같았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지만, 책에서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시험 기간만 되면 현타가 와서 나는 폭풍 독서를 한다. 그렇게 시험 기간마다 내 마음을 울리며, 심지어 눈물을 흘리며 읽던 책이 몇 권 존재한다. 가장 많이 울면서 읽은, 눈물 젖은 책과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으로 내가 심리상담에서 원하고자 하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바로 구거의 <우울증 남자의 30시간>이라는 책이다. 갓 상담을 시작한 때였다. 공부가 끝나면 책의 한 챕터씩 읽었다. 내용은 꽤나 흥미로웠다.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 G와 상담사 구거의 30회차의 상담내용을 기록한 것이었다. 여러 치료를 받고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주인공이 상담에 온 순간부터, 마음을 열기까지, 그리고 우울증이 나아질 때까지의 과정이 적혀있었다. G의 대사 한마디들이, 그의 상황들이 나와 유사한 것이 너무 많아 나는 내가 상담을 받듯이 읽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생각들에 파묻혀 잊혔던 생각들이 위로받을 기회를 얻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공감이 많이 되었는지 잠도 줄여가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을수록 나는 G가 부러웠다. 지금 내 곁에 구거라는 상담사가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구거라는 상담사는 다재다능해 보였다. 다양한 상담기법에, 최면이나 인지 치료, 정신 분석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그리고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여 사용했다. 그 덕에 나는 최면도, 정신 분석도 쉽게 수용한 것 같다. 그렇게 다 읽고서도 이 책을 사고 싶었다. 이미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나는 인터넷 서점으로 책을 주문했다. 그렇게 책을 사고 재독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조금 다른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G의 강인한 태도들이 보였다. 나와는 달랐다. 책을 읽을수록 G는 나으려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나 나는 단지 낫고 싶다는 생각만 가진 사람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책이 있다.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이라는 책이다. 신경증이 매우 심하게 재발한 시기에 읽었다. 가족을 미워했으나 그 어디서도 공감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가족을 미워하면 안 된다는 이중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은유 작가는 내가 스스로도 수용하지 못하는 생각을 수용해주었다. 의식적으로 잊고 있던 성폭력의 생각들이 다시 올라오던 시기에, 나는 사실 어디서도 공감받지 못했다. 상담에서조차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그렇게 내 감정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무시당하고 억압받았다. 그 감정들을 쓰다듬어 준 것은 은유 작가의 글이었다.
나를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글들을 보며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문체가 부러웠다. 책을 선정할 때는 주제를 정하고 작가를 보는데, 처음으로 작가가 좋아서 그 작가의 나머지 책들이 읽고 싶어 졌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울면서 나는 또 책을 읽었다. 여성, 엄마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해 쓴 글들이 많았다. 아마 내가 여성이고, 약자의 위치에 많이 있어서 더 공감이 가고 인상 깊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나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언젠가는 꼭, 내가 받은 도움처럼 글로, 책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결국 나는 힘들 때마다 다시금 글을 찾고, 책을 찾는 것을 반복했다. 사람보다 글이 편한 것일까? 신기하게도 글에서 위로를 많이 받는다. 글은 단순히 텍스트의 의미를 넘어서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매개체다. 때로는 사상, 감정, 행동, 시간, 경험 등 많은 것을 내포시한다. 그렇기에 글은 위험하면서도 효과적이다. 글로써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다. 나는 타인을 돕는 데 사용하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치료를 받으면서, 다시 신경증에서 빠져나오면 항상 나를 위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남을 위하고, 남을 생각하는 글들은 아직 쓸 역량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이 많은 글들을 쓰고 있다.
이 글들이 모여 나를 치료했듯이, 훗날에 남도 치료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