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
과거에 겪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우울한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울해하지 않았고, 행복한 일들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았다. 웃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슬펐다.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회피하며 살아왔다. 로봇과 다름없던 시간들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항상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어쩌겠는가? 누구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에게 화가 나는 건지, 타인에게 화가 나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의 선택들로 인하여 지금의 나는 신경증이 발병하였지만, 나는 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순간의 나는 옳았다. 여전히 나는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악의 선택은 무작정 타인에게 감정을 배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부정적인 감정은 해롭다고 생각했다. 분노, 우울, 슬픔, 후회, 짜증, 공포 등의 감정이 좋은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감정이란 긍정적인 감정만 가지고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아도 부정적인 감정은 항상, 언제나 나를 따라왔기에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감정만 보여주면서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선택적으로 취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니,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불행도 느끼지 않겠다는 내 선택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더 위험해 보였다. 처음 내가 감춰두고, 숨겨둔 감정들은 이렇게 위험한 정도의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억누르기 시작하자 감정은 날 상처 낼 수 있는 가시가 생기고, 독을 품고 있는 형체 없는 위험한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감당하지 못하는, 내가 만들어냈지만 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나는 이 감정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나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도록, 독을 내뿜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방법을 바꾸려 했지만 이미 굳어지고 각인되어버린 무의식은 내 의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일을 구분 지을 수 있다. 나는 일을 3가지로 나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로 구분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되길 바란다.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할 수 있기에 하고 싶은 일이 되는 경우도 많다. 슬프게도 나는 그 전제조건이 성립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가장 3가지 영역 중 가장 넓은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하며 살았다. 하기 싫은 일조차도 할 수 있다면 그것에 감사하며 했다. 언제 갑자기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지 모르니까. 그것이 문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했는데, 하고 싶은 것은 눈치채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나는 내 욕망과 욕구를 철저하게 배제시킨 삶을 살았던 것이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야 겨우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열심히 한 과정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출발선에서 또 달려야만 했다.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이렇게 해도 부족했다. 비장애인들과 같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심지어 타고난 재능도 없던 나는 더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주 다행히도, 성실함과 인내심을 타고났다.
그러다 보니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를 무시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한 손으로 참 많은 것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보통 이상이 되어야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단지 한쪽 팔로 두 배의 노력을 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성취감이라는 결과와 함께 노력한 만큼 고통이 찾아왔다. 그래도 스쳐가는 과정보다 기록으로 남는 결과를 믿었고, 결과가 중요해졌다. 내가 다친 결과, 내가 아무리 열심히 치료를 받는다고 한들 내가 낫지 못한다는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결과가 있기에, 노력했던 학창 시절의 과정도 빛을 볼 수 있었다. 피나게 노력한 과정은 있어도 결과에 따라 나는 웃기도, 울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쩌면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과거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대부분의 위인, 멘토, 성공한 사람들은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 내가 힘든 것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항상 찬란한 미래를 꿈꿨다. 꿈을 꾸었기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붙들며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를 너무 돌보지 않았다.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만 표현은 하지 않으려 했다. 표현하기 시작하면 힘들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이 되어버리니까 나조차도 외면했다. 마치 주문을 걸듯이 행동했다.
지금 무너지면, 내가 꿈꾸는 미래도 이룰 수 없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