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상은 예상보다 아프다.

죽음을 느껴버린 그날.

by 노을

인간의 죽음, 생로병사. 태어난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진리. 그 진리를 나는 알고 있으면서, 모르고 있었다. 내 첫 생로병사는 외할머니였다. 그때 들었던 말. 호상. 살만큼 살고 치매로 떠난 세상. 살만큼 살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저 평균 나이 이상을 살았다는 그저 그런 표현일까? 아니면 좋은 것을 많이 누리고 떠난 이를 위한 표현일까?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표현이라는 것을.


나는 어렸고, 여렸고, 몰랐다. 죽음이, 상실감이, 부재가 주는 의미를. 그리고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죽음이, 상실감이, 부재가 주는 의미를. 애상이 무엇인지를.


애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애도의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의 죽음. 자연사와 사고사. 예상 가능한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 내 지인과 그렇지 않은 자의 죽음. 얼마나 더 많이 죽음을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까? 난 그저 모두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으로 나누었고, 그중 내 죽음이 나의 최고의 가치였다. 2019년 9월 29일 그 이전까지는. 나의 죽음. 오로지 내 죽음만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죽을 것이라고는 쥐꼬리만큼 생각도 못 하던 그러한 시절, 타인의 죽음이 중요치 않았던 세계. 그때 나는 타인의 죽음을 보았다. 죽음을 느꼈다. 가장 소중했던, 오래되었던, 친했던 이의 죽음. 아주 갑작스러운 사고.

2019년 9월 29일. 모든 인간관계 중 나와 제일 가까웠고, 내가 제일 사랑했던, 나를 제일 사랑해주던 친구 “S”가 술을 마시고 실족사를 당했다.


친구의 죽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숨 쉬는 것조차 까먹었던 그 날.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너를. 그 순간의 나를. 그때 내가 보았던 것을. 그날의 기억은 중요했고, 기억해야 했다. 그렇기에 나는 악마보다, 저승사자보다, 염라대왕보다 더 높은 신이 되어야 했다. 시간을 멈춰야만 했다. 그 어느 순간도 흐르게 두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었다.


망각의 동물.


그래서 내가 싫었고, 그녀가 미웠고, 어떻게든 기록을 해야만 했다. 배운 적 없지만 봐야 하는 시험, ‘상실과 애도’라는 시험에 떨어지고, 불합격했다.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기에.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이기에. 그러기에 나는 이 과목을 공부하고, 배워보고, 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