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하루, 이상한 촉.
2019년 9월 29일.
나는 그날도 아팠다. 내가 아팠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개강을 하루 앞두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병이 악화되었다. 갑자기 감정의 차단기가 열려버렸다. 차단기 스스로 나사가 풀렸다. 감정의 날 것들을 하나하나 처음 느껴본 7월의 어느 날부터 나는 매일 오열하고, 감정과 싸우고, 싸우다 지쳐 두려워하고, 회피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있었다.
그날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일요일 오후를 아프게 보낸 나는 여전히 나의 죽음만이 이 모든 것을 멈출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판단했다. 연탄과 번개탄, 한강, 또 무엇을 떠올렸을까. 무엇이 나에게 옳은 일인지를, 아니 어느 것이 나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지 고민했다. 죽음과 살아감을 저울질하며 나에게 ‘넌 그래도 살아야 해’라는 위로를, 어쩌면 가장 나에게 잔인하고 슬픈 그 대사를 누군가라도 해주길 간절히 빌었다. 그렇다면 화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에게는 이 고통을 견디어야만 하는 이유, 그만큼
소중한 대상이 필요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왜 필요하냐고, 이렇게 아픈 나를 보면서도 같이 살자고 말할 수 있냐고, 화라도 내야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화낼 대상이라도 생겨야만 했다. 매일이 아픔으로 가득한 나는 그런 오기로라도 버텨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연락했다. 나의 지지대를 자처했던, 부모보다 더 용기 있게 그 자리를 차지했던 친구, S에게. 어쩌면 나는 친구가 아니라 부모에게 전화했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내 친구는 덜 우울해서 술 한 잔이라도 덜 마셨을까? 아니면 그 친구에게 메신저가 아닌 전화를 해야 했을까? 그랬다면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들어주기 위해 술을 그만 마셨을까? 나는 S에게 메신저를 보낸 그 순간부터 나의 모든 행동과 상태에 대해 매일 반추했다. 내가 바꿀 수 없었던 것이 정말 단 한 개도 없었는지. 내가 S에 대해 놓친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는지.
[나] 그만하고 싶어
[나] 쉬고 싶어
[S] 어떻게 해줄까
[나] 나도 모르겠어
[나] 말하면 나아진다고 하니까
[나] 근데 아니네..
[S] 나도 모르겠어
[S] 어떻게 답장해 줘야 하는지
[S] 내가 어떻게 말해줘야 하는 건지
[S] 어떻게 하는 게 너에게 위로가 되는지
[나] 미안 어렵게 해서..
이 짧은 대화 이후 나는 침대에 누워 그저 천장만 멍하게 쳐다보았다. 항상 쳐다보던 천장. 그날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아. 그날은 유난히도 조용했다. 태풍이 일어나기 전 화창한 날이 꼭 오는 것처럼, 매우 평온한 공기가, 다시는 없을 그 공기가 그렇게 크나큰 일을 앞둔 전조증상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렇게 나는 두어 시간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살아있음보다 죽음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건 사는 것이 아니라고, 이런 건 삶이 아니니까 포기해도 괜찮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합리화하고, 반문했다. 이제 이런 상황에서의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건지,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가 있기는 한 건지.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감정의 날것들이 나를 죽이려 달려들고, 벼랑 끝에 있는 나를 누군가가 손가락 하나로 힘을 주지 않고도 툭 건드리기만 해도 나는 추락할 것 같다고, 그게 내가 느끼는 내 상태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무슨 일이라도 생겨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신은 그렇게 내 수많은 기도 중에 이번 기도에만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