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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Dec 24. 2020

상담은 연습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어쩌면 처음인 심리상담 - 2

접수면접을 하던 중, 친구와의 사별을 경험했다고 밝혔고, 감정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그러자 상담사는 조금 있다가 전화를 끊고 괜찮을지 물었다.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 잘 판단이 안 선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라는 상담사의 말에 오히려 더 어려움을 느꼈다. 항상 타인이 원하는 대로 하던 습관이 있어서 타인과 있으면 내 감정이 잘 안느껴진다고, 나도 모르게 참다가 혼자 있을 때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다고 말을 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상담사 : 괜찮아요?


나 : 그냥 좀 낯설어서요...  

   

상담사 : 낯설어요? 어떤게?     


나 : 내 이야기를 한다는게. 다시 좀 그러네요.     


상담사 : 으음... 노을씨 이야기를 해주세요.     


나 : 어렵네요.     


상담사 : ^^. 안 해봐서 어려울 것 같긴 해요. 들어보고 싶고, 듣고 싶고 궁금하니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걸 노을씨가 알고 있었으면 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고, 아마 어렵다고 느껴지고, 잘 안된다고 느껴질텐데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괜찮아요. 어색하고 안 해봐서 그런 거니까. 들어주는 것을 익숙해지고 잘하잖아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주장이나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라고 해도, 10년 넘게 그렇게 살았던 거라, 그 기술을 탁월하게, 생각을 굳이 안 해도 거의 본능적으로 쓸 것 같아요. 타인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맞춰주는 일. 반대로 생각하면 앞으로의 10년을 조금은 달리, 10번 중에 3~4번은 나의 욕구에 조금 더 기울여보고, 조금 더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한다면, 언젠가는 조금 더 편안하게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조금은 편해지는 날이 있을 거예요. 상담은 노을씨가 연습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그걸 나에게 연습하면 좋을 거예요.     


나 : 음... 내 주장을 한다는 것이, 그게 이기적인 거라고 느껴져요.     


상담사 : 그 말은 그렇게 하면 자책감이 느껴진다는 건데, 그건 좀 이기적이고, 못됐고, 나만 생각하는 것 같고, 그런 무거운 마음이 들면 못하죠.     


나 : 그쵸. 그래서 여러 가지 것들을 못 하고 있죠.     


상담사 : 그런 생각을 왜 갖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그 말을 따라가면 이제 노을씨 주변에 다 이기적인 사람뿐이네.     


나 : 타인일때는 적용하지 않아요. 저한테만 적용해요.     


상담사 : 아 그래요? 왜 그렇게 본인한테만 퍽퍽해요?     


나 : 어떤 검사를 하든,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졌다고 나오더라고요. 그런 거 때문에 더 그러지 않을까요? 환경적인 탓도 그렇고,      


상담사 : 그렇구나. 이렇게 저렇게 자기를 이해하려고, 되게 많이 알아본 것 같아요     


나 : 어...그쵸. 상담쪽도 원래는 진로로써 생각해봤으니까. 하도 이해가 안 돼서.     


상담사 : 그렇구나. 본인에 대해서 알기는 많이 아는데, 어떻게 그게 잘 놓이지는 않네요.     


나 : 그쵸. 그게 잘 놓였다면 이러고 있지 않겠죠.     


상담사 : 그래요. 노을씨가 내 주장을 하고, 내가 원하는 걸 하는게 이기적이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네요. 뭔가 좀 쓰라리기도 하고, 마음이 좀 아프네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나 : 죄송하네요. 그런 마음이 들게 해서... 괜히 쓰라린 경험을 저 때문에 하게 된 거 같아서     


상담사 : 아니에요. 그 쓰라리다는 것은 노을씨를 잘 이해했다는 거니까. 더 잘 이해했다는 의미로 말을 한 건데. 노을씨가 이런 얘기를 안 해줬다면 노을씨의 마음을 진짜 알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 감정을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자책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줄은 몰랐을 테니까. 노을씨를 덜 이해했을 것 같고, 덜 이해했더라면 더 다가가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노을씨가 그러는구나, 노을씨의 감정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어요. 감정을 주고받는 게 좋은 거죠. 그게 뭐 기쁨만 해당되는 어떤 감정이 아니더라도요... ^^. 노을씨 마음의 부담을 줄여주려고 엄청 주저리주저리 얘기하고 있어요.     


나 : 네 알고 있어요. 잘 포장해주시는 거.     


상담사 : ^^. 사실을 말한 거예요. 근데 되게 구구절절 설명을 해주고 있는 거예요. 나에게 아픔을 줬다고 오해할까 봐.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고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데, 잘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나 : 감사합니다.     


상담사 : 네. 그래요. 그러면 다음에 통화할 때 요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고, 노을씨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힘들고 불편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 다음에 다시 통화할 때까지 그런 비슷한 감정을 또 느끼게 되는 일이 생기면, 그 일에 대해서 저랑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고, 그게 꼭 아니더라도 친구가 떠오른다든지, 플래시백 현상 때문에 좀 힘들면 언제든 전화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나 : 네 감사합니다.          



첫 접수면접 전화에 나는 상담사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그러나 처음으로 계속해서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상담은 시작되었다. 친구 S로 인하여 만난 소중한 인연. 수많이 했던 상담 중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나를 애도할 수 있는 상담이. 물론 이때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라포가 잘 형성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정말 질리도록 친구가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플래시백 : 사람의 마음에 예기치 못하게 역사적인 장면 혹은 과거경험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현상     

라포 : 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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