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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Dec 28. 2020

이 말은 참다 참다 하는 말이잖아요.

처음으로 내민 손 - 4

상담사 : 슬퍼해야죠. 마음껏 슬퍼해야죠. 그래도 되고. 그게 어떤 과정을 담는 게 필요해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어요.     


나 : 애도를 해주고 싶은데... S를 위해서 해주고 싶은데 대부분 애도의 방법들이 살아있는 나를 위해서 내가 더 편히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방법들 같아 보여서 제대로 된 애도를 못하겠는 거죠.      


상담사 : 애도하기 어려웠단 얘기인 거예요?     


나 : 예전에 사이코드라마라는 걸 해봤어요. 그래서 S에 대한 주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울기도 해봤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든 거죠.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 거죠.     


상담사 : 사이코드라마는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나 : 우울증이나 ptsd를 앓고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와서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가 상담도 조금 해보고 정신분석이라는 것도 해보고 말로 하는 건 안되나 보다 싶어서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다가 사이코드라마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접하게 되었어요.     


상담사 : 그게 친구와의 사별 이후에 하게 된 거예요? 노을씨가 기대했던 거는 뭐였어요? 거기 갔을 때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간 건지 궁금해요.     


나 : S에 대한 생각이 들거나, S를 떠올릴 때 지금은 너무 아파요. 좋은 기억인데 그 친구하고 추억인데, 만들 수도 없는 귀중한 추억인데, 그걸 떠올리는 게 너무 아프니까 그걸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겠는 거죠.     


상담사 : 너무 아파서 잊어버리고 싶단 이야기예요?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 : 저도 모르게 자꾸 피하고 있는 거죠.     


상담사 : 그게 내가 그 친구와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예요? 그니까 노을씨가 느끼기에 그 감정을 피하고, 대면하지 않는 게 마치 그 친구를 배신하고 멀게 밀쳐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일까요?     


나 : 그쵸. S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내가 정말 진짜 친구였다면, 서로가 친구라고 여기고, 친구인 사람이었다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상담사 : 친구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나 : 아파도 기억해야 하는 거고, 힘들어도 감내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감내가 잘 안 되네요.     


상담사 : 근데 노을씨가 너무 아프다고 이야기하잖아요. 100% 다 피하고 외면하는 거로 들리지는 않는데. 느끼고 느끼다가 못 견뎌서 하는 말인 걸로 들리는데, 아니에요?     


나 : 이렇게도 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니까.     


상담사 : 어떻게 안 피해요? 너무 힘들어서 피하는 건데. 노을씨가 하는 이 말은 참다 참다 하는 말이잖아요. 처음부터 아예 딱 잘라버리고, 어머님이 하셨단 얘기처럼 이미 간 사람이니까 됐어, 이렇게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친구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떠올리고 생각하다가 너무 아프고 힘들고 버거워지면 그러면 좀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잖아요.     


나 : 그것조차도 이기적이라고 느끼는 거죠.     


상담사 : 아이고... 그렇구나. 뭐랄까, 소에다가 수레를 달고 운전할 때 목적지까지 사람이 끌고 갈 때요. 중간에 쉬는 게 좋을까요? 안 쉬는 게 좋을까요?     


나 : 쉬는 게 좋겠죠     


상담사 : 특히 그 짐이 굉장히 크고 무겁다면 더 자주 쉬어야겠죠. 그래야 목적지까지 잘 갈 수가 있잖아요. 안전하게. 계획한 대로. 그쵸? 노을씨가 지금 이 친구와의 이별을 위해서 되게 긴 시간 씨름하고 있는 건데 이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도 그 감정을 끝까지 쉬지 않고 이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거는 신이야, 신. 사람이 아닌 거죠. 그렇게 갈 수가 없거든요. 쉬어줘야 해요. 가끔은 다른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일 때문에 웃을 수도 있어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를 노을씨가 외면하고 버리고 그 친구에 대한 것들을 소중한 것들이 아닌 것처럼 구는 건 아닌 거예요. 오히려 그 친구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잘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이 시간을 가져야 하는 거거든요. 언젠가는 그 친구를 떠올렸을 때 지금만큼 죽을 것처럼 덜 아픈 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근데 그럴 수 있으려면 지금 가끔 그 마음을 좀 내려놓고 추스를 시간도 필요해요. 그게 어떻게 보면 길게 봤을 때 S와의 그 기억을, 좋은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거예요. 근데 지금 이것을 안 하면, 쉬지 않고, 계속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정제하면서 막 혼내고, 다그치고, 그렇게 가면 그 친구와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할 수가 없어요. 너무 힘들어서 아마 노을씨가 어쩌면 지금 벌써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삶을 견디기가 힘들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너무 무거우니까.     


나 : 맞아요.      


상담사 : 그니까 노을씨가 좀 쉬고 싶고, 좀 내려놓고 싶어 하는 마음은 더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어요. 그 친구와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한. 그리고 되게 중요한 시간일 수 있어요. 왜 이렇게 자신을 채찍질을 해요? 안 그래도 아픈데.


나 : 그래야만 살아남았으니까. 그렇게 된 거죠.     


상담사 : 그렇구나. 누가 이렇게 채찍질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나...



사이코드라마 : 의뢰인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연기 즉 행동을 통해 이해와 해결을 목표로 하는 집단정신 요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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