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을 Dec 29. 2020

말하지 않은 것들이 참 많아서.

처음으로 내민 손 - 5

상담사 : 그렇구나. 누가 이렇게 채찍질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나...     


나 : 그러게요. 스스로를 택한 것 같긴 한데, 채찍질하는 것이 제일 편한 방법이었죠.     


상담사 : 그게 그동안은 노을씨를 보호해줬나 보다. 살아오는 동안에 그 방법이 안전하게 지켜줬나 봐요. 과거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 지금 노을씨한테는 그 방법은 오히려 많이 힘들게 한다. 그쵸? 자신을 채찍질하는 건 너무 힘들어. 그 방법이 이제 좀 안 맞나 봐. 다른 방법을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채찍질하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 : 오랜만에 눈물이 났네요.      


상담사 : 그랬어요? 눈물이 났구나. 어디서 눈물이 난 거예요? 전화라서 몰랐네.     


나 : 아프다고 말할 때, 그립다고 말할 때     


상담사 : 말하지 않고 혼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쵸? 어떻게 보면 많은 것들이 노을씨 안에 있겠어요? 말하지 않은 것들이 참 많아서.      


나 : 그냥 보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보기만.     


상담사 : 같이 찍은 사진 같은 거 없어요? 안되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지. 그 다 참느니, 덜 만족스럽더라도 차선으로라도, 사진으로라도 봐야죠. 100%가 아니더라도. 80, 60이라도 채워야지. 만나요, 사진으로라도. 만나서 하고 싶은 얘기 해도 되고. 물론 사진이라 만나도 답은 물론 없겠지만.     


나 :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 듣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원래도 S와 대화를 할 때 제가 더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었고, 오히려 제가 들어주고 그 아이가 말을 하고, 의지를 하는 그런 관계였고, 가끔 힘들 때 제가 의지를 하던 그런 관계였는데, 그냥 그렇게 투정을 부리고 자기 일상을 얘기하면서, 웃으면서 얘기를 해주고, 힘들다고 울고 하던 것들을 듣고 싶어요.     


상담사 : 그래요.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근데 지금 노을씨를 보니까, 그 친구도 노을씨를 많이 궁금해할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노을씨가 자기 없이 지낼 이 시간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있는지 참 많이 궁금해할 것 같아요. 그 친구를 직접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지만, 그래도 노을씨가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좋은 거 같아요. 그 친구가 분명 듣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사진으로라도 보고 싶으면 봤으면 좋겠고, 얘기를 들어주고 싶은데 못 들어줘서, ‘네가 나한테만 해줬던 미주알고주알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그리워.’ 이런 얘기, ‘네가 참 보고 싶어.’라는 말, 직접 못 만나더라도 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친구가 어디선가 듣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을 느끼는 노을씨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50분간 우는 것과 친구를 못 보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 S에게 해주지 못해 후회되는 일들, S가 나에게 어떤 친구였는지, 갑작스러운 S의 죽음에 대한 감정, 생일 축하를 듣는 것에 대해서 다른 친구들과 S에 대한 감정을 비교하여 가지는 어려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심리상담은 주로 이렇게 내 말에 의해서 상담이 이루어진다. 너무 힘들어서 전화라도 했던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상담에 성실한 내담자가 점점 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괴로움을 공유할 사람이 생겼고, 나의 괴로움은 조금씩 덜어져 갔다. 조금씩 나아져갔다.

작가의 이전글 이 말은 참다 참다 하는 말이잖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