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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Dec 27. 2020

두 가지를 다 해도 괜찮아요.

어쩌면 처음으로 내민 손 - 3

상담사 : 노을씨는 그 친구 말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요? 그 친구가 살아있을 때 보고 싶으면 어떻게 했어요?


나 : 연락을 해서 볼 날짜를 잡죠.     


상담사 : 그렇구나. 보고 싶음을 표현을 하네요.     


나 : 그런 방식밖에 없었는데, 그 방식이 이제 안되니까.     


상담사 : 그래요. 그 전처럼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연락할 데도 마땅치 않고, 되게 막막할 것 같아요.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어 답답할 것 같아요. 이걸 표현해서 약속 잡고 만나면 속이 시원해지고 괜찮아지는데, 이제 표현할 수도 없고, 노을씨 마음 안에만 보고 싶다는 감정이 가득 있으니까 더 힘들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해볼 수 있을까?     


나 : 그걸 모르겠어서요... 그걸 도저히 모르겠어서, 사실 선생님이 바쁘실 거라 생각을 해서 어지간하면 전화를 안 하려고 했는데... 친구들의 축하가 오는데 이게 고마운데 너무 슬프니까 이 친구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슬픈 생각이 아예 안 나는 건 더더욱 아니고...     


상담사 : 아이고, 축하해주는 걸 마음껏 기뻐할 수가 없네요. 지금은. 그 친구 말고도 노을씨를 챙겨주고 기억해주고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친구가 너무 그립고 생각이 나서 축하를 있는 그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없나 보다.     


나 : 그게 축하해주는 친구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안 좋은 것 같아서. 내 감정을 억제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게 잘못된 행동인 거 같아서 연락을 드린 것이거든요.     


상담사 : 아... 그래요? 아유, 듣기만 해도 힘들었겠다. 우리 노을씨에게 좀 어려운 말일 것도 같은데요. 노을씨가 친구들의 축하를 받을 때 가장 가까웠고, 가장 좋아했던, 떠나간 친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거는 나쁜 게 아니에요. 느껴도 돼요. 그 친구를 그리워해도 괜찮아요. 그거 때문에 슬퍼해도 돼요. 그거 때문에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친구들이 연락할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그 친구들이 축하해주는 것을 기쁘게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거랑 별개로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고 그 친구가 살아있었다면 누구보다 먼저 나한테 연락을 줬을 텐데 목소리라도 너무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그 마음, 그리움을 느껴도 돼요. 기뻐해도 되고, 또 친구를 떠올리면서 그리워해도 돼요. 두 가지를 다 해도 괜찮아요.     


나 : 근데 그 그리운 게 너무 아파요... 너무 아프니까 그 친구 생각을 안 하려고 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는데, 친군데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거죠.     


상담사 : 많이 아파서 견디기가 힘들구나.     


나 : 차라리 예전에 팔이 절단되었을 때가 있는데 그때가 나은 거 같더라고요.     


상담사 : 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때 일도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그것보다 더 힘들다는 이야기구나. 비교가 안 될 만큼 힘들다. 그쵸?     


나 : 차라리 진짜 몸이 아픈 게 어떻게든 낫겠는데 이건...     


상담사 : 마음이 메어지네... 감정이라는 게 항상 안 아프면 좋은데, 때로는 참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아요. 안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버겁고, 너무 아프고,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은 차라리 몸이 잘려나가는 게 덜 아플 것 같은 그런 감정들이 있죠. 노을씨가 그런 상황이라는 게 너무 느껴져요. 진짜 많이 그리운가 보다... 많이 보고 싶고, 아직은 그게 너무 크다. 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나 : 내가 이 친구만을 위해서만 살았던 것도 아니고 친동생인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과 평범한, 조금 더 친했던 친구 정도였을 텐데... 왜 이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상담사 : 노을씨 혹시 그 친구랑 둘이서만 친했어요? 혹시 다른 친구들이 그사이에 없었나요?     


나 : 초등학교 때 친구였는데,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되고 중고등학교도 다른 데 가고 대학교도 다른 데를 가서 서로 겹치는 친구가 사실 없어요.     


상담사 : 이 마음을 같이 느끼고 공유할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마 그 친구를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또 있을 텐데. 근데 이제 노을씨가 혼자 감당을 해야 하니까.     


나 : 심지어 서로의 부모님도 아는 사이거든요. 인사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할 정도로 서로 친한데... 저희 부모님도 S를 알고 저도 S 부모님과 가족들을 다 알고, 근데 저희 엄마 반응이 ‘너무 빠져있지 마라, 어서 헤어 나와라, 간 사람이니까 잊는 게 좋다.’ 이러니까... 물론 저를 위한 거라는 걸 알죠. 그런 말을 처음 장례식장을 예의를 갖춰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한 통화에 그런 말을 들으니까 남들에게 말하는 것도 두려워지더라고요.     


상담사 : 그랬구나. 너무 이르게 얘기하셨다. 너무 급하셨네. 혹시 노을씨가 너무 슬픔에 빠져있을까 봐 얘기하신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너무 이르셨다. 너무 서두르셨네요. 어머님이. 너무 서둘러서 덮어주시려고 애쓰셨구나. 노을씨는 많이 불편했겠어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지금은 그 친구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는데 어찌 떠나보네요... 못 보내지. 아직은 못 보내지. 가긴 어딜 가.     


나 : 그나마 S를 알았던, 곁에 있는 사람 중에 유일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이제 내가 슬퍼하면 안 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담사 : 슬퍼해야죠. 마음껏 슬퍼해야죠. 그래도 되고. 그게 어떤 과정을 담는 게 필요해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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