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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Oct 02. 2023

어쩌다 보니 장애인

renewal.2 어쩔 수 없이 장애인

- 쾅!!!

 1초도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찰나여서, 다시 돌이켜봐도 한순간의 꿈같다. 1초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감각도, 고통도, 눈물도 없었다. 너무나도 큰일이 벌어지면, 1초 이상으로도, 고통을 못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현실에 돌아온 것은 다름이 아닌, 친구들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 덕분이었다. 차 안은 온통 친구들의 울음과 비명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이 순간부터 내 눈물은 차가 부딪힌 쾅 소리가 가져가버려서 나는 울 수가 없었다. 


비명 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응급실로 향하고 있으니, 보호자가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다. 당시 핸드폰이 없던 나는, 기사님 핸드폰을 빌려 부모님께 이 상황에 대해 말을 전했다.            


"여보세요? 어, 나 티키타카인데 놀라지 말고 들어. 내가 지금 학원차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어. 어디서 났냐면, 집에서 오른쪽으로 10분 정도 간 곳에서 사고가 났어. 내가 팔이 학원차 밖으로 떨어진 것 같아. 지금 우리는 **대 응급실로 가고 있으니까, 팔 들고 이쪽 응급실로 오면 돼."


- 나는 그때, 이상하게 너무도 정신이 멀쩡했다. 

 누가 봐도 팔이 분명 없고, 기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아, 굳이 따지면 없는 팔이 있는 느낌이 나는 것 빼고는. 그 이상함을 참지 못하고, 없지만 있는듯한 팔을 들어 올렸다. 팔을 올렸는데 어깨만 움직였다. 어깨가 움직이니, 절단면의 내 뼈와 살과 피를 보았다. 징그럽고, 이상했다. 그렇게 사고가 났음을 인지하는 장면을 보니, 그제서야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린아이라고, 그때부터 다시 통증을 느낄까 봐 절단된 손, 팔, 어깨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부로 현실감을 느끼지 않은 채로 병원에 도착했다.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갔다.

 여기서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두 번째 포인트다. 나는 당연히 두 발이 멀쩡하니까. 그게 정말로 내 머릿속에서는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나온 의사들 모두가 나를 놀랍게 쳐다봤다. 시골에서 이렇게 큰 사고가 난 것이 첫 번째 이상함이었고, 절단사고를 당한 아이가 걸어서 들어와 베드에 누워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상함이었다. 얌전히 베드에 눕고 나니까 겨우 정신 차린 의사들의 응급처치는 내가 스스로 눕고 나서 시작되었다.


 모두가 내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응급처치를 받고 있을 때, 부모님이 도착했다. 나의 절단된 오른팔을 주유소 외투에 감싸들고서. 나와 분리된 절단된 팔 응급조치가 시작되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119 차량이 왔다. 서울 병원으로 이송을 하기 위해서. 누워있는 나와 내 팔은 그렇게 분리된 채로 구급차에 탔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의 한 신경 접합 전문 수술 병원. 절단면은 깔끔했고, 응급처치 역시 잘 되어 있었고, 내가 음식을 먹은 지 시간이 꽤 지났고, 원장님도 계셔서 간단한 설명과 준비 이후 나는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수술 전 대기실이라고는 딱히 없어, 병원 로비 근처에서 대기했다. 의사는 정말 간단하게 내게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수술받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내가 수술을 받으면 나을 수 있는 것인지 물었다. 의사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선택지가 없었고, 그 말을 믿어야만 했다. 믿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말을 아주 간절히 믿었다. 그래야만 수술을 받는 이유가, 살아갈 이유가 생기니까. 차가운 냄새가 가득한 수술실에서도 마취가 되는 동안에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슬픈 진실을 말이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 그렇게 나는 수술을 마치고 눈을 떴다. 그리고,            


- 눈을 떠서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2007년 4월 5일 목요일, 그날, 그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 어제와 다름없고, 내일과 다름없을 그러한 일상을 보내던 중에. 그러나 조금 이상함을 예감한 하루였다. 그날 아침 처음으로 학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과 같이 놀고, 공부하는 것이 낙이었던 내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당연한 거절을 당하고, 학교에 갔다. 수업을 듣고, 뻔한 하굣길이었다. 운동장을 건너는데 아차 싶었다. 교재를 두고 왔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학원차에 탔다. 머뭇거렸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내가 이 신호를 알아차렸다면, 사고를 당한 과거의 나를 구할 수도 있었다고 상상한다.


일상적인 것이 무서워질 줄 몰랐다.

학원차를 타고 오른쪽에 있던 슈퍼마켓, 왼쪽의 버스정류장, 주유소와 그 옆의 우리 집, 다시 또 오른쪽에는 남한강이 쭉 펼쳐져 있다. 남한강을 지나 집 옆의 교회, 모텔, 심지어 고깃집까지 지나가고,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허허벌판 논과 밭의 풍경을 너무 익숙하게 보았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풍경. 그 일상적인 풍경에서            


쾅!!!


하는 사고를 당하다 보니까.


사고 직후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기사님은 졸음운전을 하셨고, 그로 인해 중앙선을 침범하였다. 하필 그 순간 레미콘 차량이 반대 차선에서 오고 있었고, 결국 학원차량은 피하지 못하고 레미콘 차량과 부딪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딪치자마자 기사님은 잠에서 깨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틀었다. 하지만 이미 부딪친 순간 차 창문의 유리는 깨졌고, 핸들을 돌리는 순간 운전자 맞은편에 앉은 나는 깨진 창문 쪽으로 던져졌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서. 결국 날카롭게 깨진 창문 유리는 내 팔을 절단시켰고, 절단된 오른팔은 차도로 뚝 떨어졌다. 이 모든 일이 단 1초 안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이러했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약 80% 정도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래도 내가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각자가 다른 이유로 장애를 갖게 되겠지만.


사고 이전에 나는 (발달) 장애인과 같은 수업을 듣고, 학교를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나는 장애를 얻은 순간 무엇을 해도 내 삶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던 미래에 장애는 없었으니까. 언제나 살아남으면서, 실제로도 내가 원하고 꿈꿨던 미래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 결국 실패로 나락하는 삶은 아닐지 몰라도,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어떤 것도 예상할 수 없는 그런 미래로. 장애로 인하여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얻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은 더 이상 평범하고는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누구나 특별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아주 간절히 초등학생 때부터 평범하기를 바랐다. 누구나 특별해지기 전에, 너무 특이해지면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마치 나처럼. 그저 사고를 당했을 뿐인데, 평범해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2007년 4월, 12살의 나이에 나는 그날 이전의 몸으로 평생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나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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