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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Oct 04. 2023

안녕하지 못한 건 통증보다 정신적 건강 때문에

restart.3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 나는 모든 것에는 총량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분명 제한적이다. 신체적 에너지, 정신적 에너지 모두. 어느 하나가 먼저 고갈되면 나머지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껴 써야 한다. 모든 것을 다.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만 절약을 외치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 사랑, 열정 등등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형태로 된 에너지들도 사고파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총량을 아는 것. 그리고 내게 어떤 에너지가 더 많은지 아는 것. 어떻게 해야 총량을 늘리고, 다시 채울 수 있는지 아는 것. 이런 것이 이제는 우리가 배워야 할 교육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항상 불안했고, 두려웠고, 긴장했다.

 살면서,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멘탈이 튼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언제일까? 어릴 적 팔이 절단되는 그 교통사고를 제외하고도, 그것보다 더 오래된 시간 속에서도, 왜인지도 모르고, 왜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로.



 이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은 대학교 입학한 16년이었다. 내가 그리도 바랐던 0순위 대학 사범대학교에 붙었는데, 대인관계도, 가족관계도 모든 것이 원만하다고 느낄 때,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너무 명확하게 말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기숙사에 가도 집에 가고 싶었고, 본가에 가도 집에 가고 싶었다. 쉴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여겼다. 무언가 한창 잘못되고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잘못된 이유를 찾는 여정에서 그나마 답이라고 할만한 것을 찾은 건 23년 중반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알게 된 진실들은 내게 불편함만 남겼다. 그래서 나는 내 정신적 건강을 포기했다. 나 하나만 포기하면, 정말 가족 모두가 편해지는 결과를 얻으니까. 그래서 날 포기하기가 쉬웠다. 다수를 위한 선택은 항상 옳게 보이는 효과를 주니까. 그렇게 내 멘탈을 버리고 살다가, 최근의 심리 상담에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 세계에선,

 기억은 왜곡되니까, 진실을 적자면, 나는 ‘부’에게 언제, 어떻게 맞을지 몰라 항상 긴장해야 했던, 심하게 맞은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 교통사고 이후에는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가부장적인 ‘부’였다. ‘모’는 그 모든 폭력 속에서 나를 보호해 준 적이 없고, 내가 ‘부’를 이해해야 할 부분이라고 요구했다. 오히려 ‘모’는 ‘부’와 ‘부’의 친척, 기타 지인들로 생기는 모든 불화를 항상 내게 토로해 왔고, ‘모’의 부모 역할을 내게 요구했다. 교통사고 이후로는 내게 과보호로 보이는 무시를 지속적으로 행해왔다. 집에 있는 나보다 3살 많은 그 남자 인간에게는 초등학생 때 폭력/성폭력을 당했고, 중학생까지 같이 살던 외할머니는 이 성폭력 사건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 인간을 피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처럼 이야기했다. 그런 본가는, 가정은 내게 단 한 번도 아름다웠던 적이 없고, 편안했던 적이 없고, 안전했던 적이 없다. 흔히 말하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이 내게는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있는 모든 세계에서 안전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안전함과 안정감을 모르는 나는, 건강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24시간 365일이 긴장 속인 내게 정신적으로 건강할 리가 없는 것은 그 누가 봐도 상식적인 말이니까. 그럼, 단순히 우울증, 조울증, PTSD 등의 진단이 없는 사람이 건강한 것일까? 의사마다 기준이 다르고, 진단명이 다른데 그럼 나는 누구의 말을 기준 삼아야 할까? 우선 전문적인 의사/심리상담사가 진단한 질병과 내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질병]

C-PTSD(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순환성 기분장애(초조 우울증)

우울증

공황장애

온몸의 경련

잦은 과각성/저각성

불안장애

식이(섭식) 장애

중독 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충동 통제 장애

해리장애

신체화

심하지 않은 강박증

수면장애

약물 등 자해행위

지속적 자살 충동/시도




[에피소드]

어릴 때 행해진 부모의 심한 신체적/언어적 폭력

자주 노출된 부모의 잦은 싸움

초등학생 때 오빠에게서 당한 신체적 폭력

초등학생 때 오빠에게서 당한 성폭력과 목격한 성적 장면

학생 때 아빠에게서 당한 성적 이슈

초등학생 때의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

고등학교 때 친구에 의한 성폭력

성인이 된 후 운전자로서 겪은 일련의 큰 교통사고

친한 친구의 사고로 인한 급작스러운 죽음

첫 심리 상담에서의 적절한 설명과 이해 없이 진행된 리퍼

개인/집단 상담에서 지속적으로 들었던 욕설과 다른 내담자의 폭력적 모습




 너무 많은 것이 있다. 그럼 나는 이 모든 것을 치료하고, 치유하고, 극복해야만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슬프지만 어찌 보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기준을, 다른 방식으로 세웠다. 누구나 건강함에 대한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 구체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이런 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건강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정(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적절한 대상에게 표현할 수 있는 것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인 가치관이 있을 것

생각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것

위기를 위기로, 기쁨을 기쁨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나/타인에게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




내 기준에 답이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건강을 되찾고,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은, 감정을 참고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참아야 할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표현할 수 있는 출구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믿을 수 있어야 결국 타인도 진정 믿을 수 있다. 가장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는 “나”를 믿지 못하면서, 나보다 정보가 훨씬 적은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가치관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의 유연성은 최근 만들어진 기준이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스펙트럼을 두고 내가 어느 위치의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바뀌어 가는 중인지 알고 있다면, 생각이 깊이도, 넓이도 더 증가할 것이고, 공감의 정도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때, 이것을 축소/확대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그만큼 다시 회복하거나/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모든 것을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된다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바로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 내로남불 중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한 개도 충족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세운 기준임에도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하는 이유는 2가지이다. 결국에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이기도 하고, 두 번째는 그만큼 저 기준들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절대로 쉽지 않다. 그러니 너무 빠르게 다 이루겠다고 도전했다가 역효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을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이런 것을 나도 내가 왜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건강해지기 위해서 관찰한 결과, 내 정신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을 모두 안다고 생각했다. 몇 가지 큰 범위의 촉발 요인(트리거)을 알고는 있었으나, 최근 알게 된 것은 내가 아직도 모르는 수많은 트리거가 있을 것이고, 그러므로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촉발시키는 요인을 매우 자주 만날 것이라는 걸, 28년째 살아가면서 깨닫고 있다. 28년째 촉발되면서도 내가 너무 체력이 없어서, 타고난 기질이 이런가 하면서 살았다. 이미 알고 있는 트리거만 해도 넘쳤으니까. 내 패닉을 일으키는 트리거는 다음과 같다.




자동차와 관련된 트리거 : 구급차(소리, 모습, 생각), 노란색 봉고차(학원차량), 내 차가 다른 차에 의해 흔들리는 순간, 창문 밖의 풍경이 교통사고 장면과 오버랩되는 순간, 도로가 1차선 X1차선으로 이루어진 도로를 주행할 때, 도로에서의 교통사고 흔적, 레미콘 차량, 급정거 & 급출발, 고속도로 톨게이트 진입로,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을 때, 차 안에서의 비명 소리 정도의 높고 큰 소리, 혼자 운전하고 있다는 감각, 내 손에 핸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




사람 및 일상에서의 트리거 : 폭력적인 장면(나/남을 향한 신체적, 언어적, 사이버 등의 모든 폭력),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장면, 아이가 우는 장면, 술에 취해 비몽사몽인 내 지인과 친구들, 누군가 문자/전화를 받지 않는 순간, 부모님의 연락이 오는 순간, 양팔에 통증이 오는 순간, 운전할 때, 운전하지 못할 때, 유댕이가 떠오를 만한 수많은 조건(장례식장, 육개장, 추억), 누군가의 자살 소식, 피, 사람들의 눈과 표정, 누군가의 접촉이 내가 겪은 성폭력과 오버랩이 될 때




모든 자극들을 사라지고, 편안하고, 오히려 아프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여기고 있게 되었다.

일단은 이렇게 두 범위로 나뉜다. 이 정도면 운전하면 안 될 상태 같고, 집에서만 생활해야 할 상태 같지만... 오히려 나는 독립했음에도 정반대로 더 많이 운전하고, 더 많이 밖에 있는다. 이러한 자극이 내게는 일상이 되어버려서. 아마 더 많은 트리거들을 가정하고, 생각한다면 나는 훨씬 더 정신적 건강은 갖다 버린 지 오래 일 것이다.



더는 무시하지 말라는 최고의 경고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가정에서 아동학대를 당한 채로 C-PTSD를 진단받은 것은, 장애를 가지고 CRPS 2형을 진단받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 이상을 못해도 2n 년간 버티고 살았는데, 몸에 어딘가에 탈이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니까. 정말 때론, 정신이 아주 건강할 때, 현재 내 몸은 매우 정상적인 반응과 기능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내 몸이 그렇게 힘들다고 소리치고, 버겁다는 경고를 했음에도 나는 깡그리 다 무시하고, 오기를 부리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나는 매우 호되게 경험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지.



마음을 무시하면, 몸이 어떻게 되는지
당신은 굳이 알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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