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한 번만 있었더라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우리 시절에 일기장을 쓰고, 검사받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나 역시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로 바꿔서 글씨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퇴원하고, 학교에 복학하기 전 처음 준비했던 일은 한글 공책을 사는 것이었다. 글씨를 정말 개발새발 썼다. 처음에는 내가 글씨를 쓸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다. 내 주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사례였다. 가끔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려는 집안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내 주변에는 그러한 집은 없었다.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당연했다. 글씨는커녕 일상을 보내는 것도 어색하고 불편한 것 투성이었으니까. 그러니 겨우 공책에 적은, 아니 그린 그 개발새발 글씨는 내가 보기에도 이제 갓 유치원생이 된 애가 쓴 글씨와 똑 닮았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씨를 썼다고 볼 수 없었다. 글씨를 그렸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다양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학교는 실전이었다. 부모님은 내 뜻대로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말을 듣지 않으셨고, 나는 학교를 가야만 했다. 그렇게 간 학교에서 5학년 때는 다행히도 일기를 쓰지 않았고, 수업 때 필기를 할 일이 많지도 않았다. 필기 속도가 느려도 여러 가지 야매법을 쓰면서 메꿔나갔다. 긴 글을 화살표로 대신 쓰고, 한문으로 대신 쓰면서.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부족함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많아지는 필기량을 따라가기 힘들었고, 집에서 써와야 하는 일기는 너무나도 하기 싫은 숙제였다. 아무리 천천히 써도 글씨는 너무 별로였다.
엄마가 항상 하던 말이 있다. “오른손잡이일 때 글씨체가 참 이뻤는데”라는 말을 계속 들었더니 왼손으로는 어떻게 써도 만족하지 못했다. 칭찬만 받아도 하기 싫은 것이 글씨를 쓰는 것이었는데, 계속된 불만만 들었다. 그래서 쓰다 쓰다 지쳐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드렸다. “제가 글씨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 혹시 컴퓨터로 타자를 쳐서 일기를 써와도 될까요?” 단번에 거절당했다. 어린 나는 선생님이 미웠다. 안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타자를 쳐서 일기를 내는 것과 손으로 써서 일기를 쓰는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이길래 거절하는 건지 모르겠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1년 내내 손으로 일기를 썼다. 어렸으니까 했고, 해야 했으니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나니까, 나름 경험치가 쌓였다. 혼자서는 죽어도 안 했을 한글 연습을 덕분에 하루에 몇십 글자라도 하게 되었으니까.
그 이후 나는 학창 시절을 어떻게 지냈을까? 연습 덕분에 어느 정도 글씨 쓰는 것에 적응하긴 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을 따라가면서 필기를 하려고 자연스럽게 악필이 되고야 말았다. 모두가 못 알아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디 보여주기는 싫은 글씨체. 손글씨보다는 타자를 훨씬 더 좋아하는, 글씨를 쓰는 일이 생기면 지레 겁부터 먹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숨기고, 별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도 될 법한 글씨체인데 나 스스로조차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왼손잡이로 바꾼 글씨의 그 처음을 알고 있으니까. 언제고 다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게 너무나도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글씨는 슬금슬금 나도 모르는 공포를 가져오는 매개체였다.
학창 시절이 끝나고 나니, 때로는 글씨 쓰는 것을 선택할 수 환경에 놓이고, 부담에서 조금 벗어나도 내 글씨는 그닥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미 몇 년을 자리 잡은 글씨다 보니 쉬이 바뀌기 어려우니까. 달라진 것은 더 이상 글씨 쓰는 것이 힘든 일이기만 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은 내 글씨체가 괜찮아 보일 때도 있다. 예전보다 훨씬 더 글씨에 힘이 덜 들어가고, 더 잘 알아볼 수 있기도 하다. 휘날리며 쓴 글씨도 날림체로 봐줄 만해졌다.
해야만 하는 것에서 해도 되는 것이라는, 그런 부담이 줄어야만 했다.
줄어든 부담은 감정을 바꿀 힘이 되었고, 글씨에도 티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