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의 우당탕탕 일기
교단에 선지 한 달이 지났다. 많은 것들이 지나가고, 많은 경험들을 하고 있다. 그중 제일 놀라운 건, 나는 학생들이 무섭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동료들은 무섭지 않은 것에 비해, 학생들이 무서웠다. 물론 티는 잘 안 나겠지만. 모든 감각을 차단시킨 채 아이들을 마주하니까. 어렵고,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한 교시, 한 교시를 마친 후에 나는 뻗는다. 분명 나는 수업이 편하지만 학생이 나를 지치게 한다.
수업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사례를 말하면, 누구나 고민하는 핸드폰과 잠자는 학생이 있다. 나는 두 경우 모두 학생들을 잡지 않는다. 정확히는 지적은 하되 진심을 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그 정도의 애정이 있지 않다. 비담임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쏟을 에너지가 없다. 학교생활 하나 하기도 벅차다. 물론 교칙상 핸드폰 하는 학생을 잡아서 훈계를 한 한 후 담임교사에게 넘기는 일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하나 더 할 만큼 애정이 가는 학생이 없다. 사실 애정을 갖고 있는 학생이면 이러지도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나는 핸드폰을 해도 못 본 척 지나간다. 그저 행동이 지나치게 심하면 앞에 제출하라고 하는 정도다. 아마 아이들은 자신들이 속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앞에 서면 모두 보인다는 걸 모른 채. 그렇게 한 달을 보냈더니 점점 핸드폰을 대범하게 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그래서 몇 번의 선도 과정을 보여주어도 학생들은 하루 이상을 가지 않는다. 그저 나 혼자만 지치고 답답할 뿐이다.
자는 학생 역시 깨우지 않는다. 사실 조는 학생은 차라리 기특하기까지 하다. 자지 않으려고, 혹은 예의를 지키려고 불편한 자세로 그렇게 잠과 사투를 벌이는 거니까. 얼마나 피곤하면, 전 날 무엇을 했든지 간에 피곤하면 잘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러하니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많고, 자는 걸 선택함으로써, 혹은 다른 걸 선택함으로써 잃어버리는 기회비용도 그들이 배워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행동이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을 보고, 잠깐의 대화를 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내가 속된 말로 쫄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상했다. 심지어 남학생에게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나는 여학생에게 쫄고 있다는 걸 알았다. 찰나의 눈빛은 너무 다양한 걸 보여주었다. 읽혔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눈빛. 짜증과 분노, 무시, 한숨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한데 모아서. 그 이후 나는 그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학생들 모두 흠칫하며 지냈다. 사실 그 모두가 나를 해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때리지 않겠지만, 때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든다. 내 트라우마 덕분에. 결국 내가 우려하던 일은 벌어졌다. 내 문제로 인해 학생들에게 편견을 갖는 일. 다행히 다른 학생이 그 편견을 깨 주고 있긴 하다. 흔히 말하는 화장이 진하고 성격이 셀 것 같은 학생인데, 나에게 호의까지는 아니지만 편하게 대화도 걸어주고, 나서서 컴퓨터 연결도 도와주려고 애쓰고(물론 1인 1역이었음) 나에게 무서움을 준 학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체감하게 해 준다. 그렇게 내 편견은 옅어지고 옅어졌다.
내가 학생을 무서워할 줄 알았지만, 이렇게 금방 그리고 다르게 무서워할 줄 몰랐다. 당장의 성적 트라우마로 남자가 무서울 줄 알았고, 집에 있는 남자와 비슷하게 생기거나 이름이 같으면 무서워할 줄 알았고, 교실에서 그 사소한 어떤 폭력과 비슷한 장면에 무서워할 줄 알았다. 정말로 이름이 같은 학생을 객관적으로 대하지 못하겠어서 최대한 조심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건 오히려 저 어딘가 멀리, 더 중요하지 않았다. 1분 1초, 당장 교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실에 들어서서 보이는 모든 학생에게 모든 감각이 집중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학생에 대한 무서움은 쉽사리 진정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때릴까 봐, 욕할까 봐, 화낼까 봐. 그리고 기타 등등. 너무 본능적이고 단순한 이유였다.
교사도 사람이라는 걸, 아마 모두가 알면서 모두가 까먹는 사실일 것이다. 사회는 교사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항상 위대한 성직자 정도로 말하고 있고, 학생들에게는 이젠 어른도 친구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는 자기를 대신해 보육을 해주고, 언제나 우리 아이한테만큼은 모든 걸 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학생이 무섭다고 말하면 이상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분명, 나는 교사이기 전에 사람이다. 그리고 교사들만이 교사들을 우린 그저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교사도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을 무서워할 수도 있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을 것이다. 안 하면 좋겠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또 있으니까.
그런 교사를, 학생을 어려워하는 교사를 주변에 두었다면 그 교사들에게 고생하고 있다고, 그럴 수 있다고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 그 말로 디데이 방학을 세고 있던 우리는 그날 하루를, 그 일주일을 기분 좋게 보낼 테니까.
여담으로 방학에 대해 많이, 또 맨날 듣는 말인데
때로는 모든 사람들이 말한다.
"너넨 방학이 있잖아. 좋은 줄 알아."
그러면 우리 교사들은 말한다.
"방학이 없으면 이 일 못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비교사님들. 일의 난이도가 딱 그렇습니다.
안 그런 일 없다고요? 한 번 해보세요... 그런 말 안 나옵니다.
학창 시절에는 방학이 있다고? 개꿀인데?
대학교 때는 방학이 있다고? 그때 장기 여행 가면 좋겠다.
실습할 때는 방학이 있다고? 그때 친구들 만나고 놀면 좋지.
교사가 되고 방학이 있다고? 놀기는... 생기부 쓰고.. 밀린 병원 투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