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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Dec 19. 2023

02. 엄마의 눈물

내 인생 가장 슬펐던 날

일주일에 한 번, 정신의학과에 가서 상담을 받으며 나의 상처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꾹꾹 눌러담고 있던 가시들이 이미 아물어버린 흉터를 다시 찢고 나왔다. 상담실에서 너무 많이 울었고, 의사는 그런 나를 보며 말없이 휴지를 건넸다. 특히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1996년, 부모님의 이혼 후 아빠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고 36살의 엄마는 12살인 나를 책임지셨다. 12살부터 30살,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엄마와 단둘이 살아왔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잠시 떨어져 있다가 다시 집을 합쳐서 39살인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그러니 엄마와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엄마를 생각하면 여러 감정이 섞여 나를 힘들게했다.


지금이야 이혼이, 싱글맘이, 돌싱이 예전에 비해 많아졌고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1996년의 이혼은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가시 돋힌 말들을 내뱉으면서 혼자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 또한 얼마나 아파서 울었을까. 아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에게 그렇게 소리쳤을까.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고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엄마가 나에게 뱉은 무수한 말 중에 가장 깊게 박혀있는 가시였던 것 같다. 저런 말을 듣게 한 아빠가 원망스러웠고, 힘든 엄마의 감정을 상처주는 말로 뱉어내는 엄마가 미웠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삐뚤어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생각이었다.


'삐뚤어질 거야.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독서실도 안 가고 야자도 안할 거야.'


라고 다짐하며, 난 공부와 멀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삐뚤어진 시기에도 엄마를 보면 눈물이 났다. 엄마가 힘든 이유가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죽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엄마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 죽을 용기도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의미없는 반항을 하며 보내던 어느 날, 그날도 엄마는 나를 보고 한숨을 쉬셨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왔고, 엄마는 나가서 전화를 받으셨다. 나는 그날따라 왜 엄마의 통화 내용이 궁금했을까. 평소 같으면 짜증내고 신경도 안 썼을 나였는데, 그날은 문에 귀를 대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난 그대로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서 펑펑 울었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사정을 하며 비참한 우리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었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 지금도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엄마가 돈을 빌리려고 했거나, 빌린 돈을 갚으라는 누군가의 전화였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 날 엄마의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비굴함 가득한 목소리가, 떨리던 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날이 내 인생 가장 슬펐던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난 조금 달라졌었다. 엄마에게 아주 조금 살가워졌고 나까지 힘들게 만들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전화 이후로도 여러 번 내가 잠든 줄 알고 혼자 부엌에서 우는 엄마를 알고 있었지만, 난 엄마에게 티내지 않았다. 내가 알면 더 비참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단둘이 18년을 살다. 엄마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대화를 피했다. 친척집, 반지하방, 고시원, 원룸을 전전하며 살았던 이야기, 돈이 없어서 겪었던 무수히 많은 비참한 이야기를 서로 꺼내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순간 엄마와 나는 서로를 보며 울어버릴 게 분명했다.

어쩌면 엄마와 나는 서로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병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미안해서, 서로가 짠해서, 서로가 불쌍해서. 그렇게 각자 꾹꾹 가슴 속에 묻어두고 꺼내지 못했던 게 결국 마음의 병이 된 것 같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시켜먹으며, 이제는 늙어버린 엄마를 보았다. 36살에 혼자가 되어 12살의 딸을 책임져온 엄마의 잃어버린 20년을 어떻게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전히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이제는 탕수육 정도는 시켜먹을 수 있는 삶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그렇게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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