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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Jan 01. 2024

04. 우울증의 원인 1

현실과 이상의 차이

우울증으로 다시 병원을 다닌 지 한 달,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우울증이 다시 재발했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병원을 다녔고 약을 먹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내 우울증의 원인을 알아보고자 과거를 떠올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꾹꾹 눌러담아 두었던 상처들이 터져 나와서 아팠지만, 원인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의 내가 겪는 감정의 많은 부분이 나의 과거로부터 이어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어떨 때 가장 우울감을 느끼시나요?"


의사의 물음에 한참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좌절할 때요."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요?"

"......제 어릴 때와 비교해요. 그리고 전 부모님처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좌절해요."


그랬다. 내 우울증의 첫번째 원인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커서라고 난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의 이상은 12살 이전의 풍족했던 삶에 가 있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기 전, 내 12년의 삶을 떠올려보았다.

집안일을 해주시는 이모님, 1년에 여러번 다니던 해외여행, 무엇 하나 갖고 싶다고 조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여유로움. 성악, 종이접기, 영어 웅변, 피아노, 플룻 등 배울 수 있는 모든 건 다 과외로 선생님이 집에 오셨고 사립 학교에 다니며 내 방 가득 외국에서 사온 인형들이 가득 했었다. 

12년간 내가 누린 것들은 엄마, 아빠가 이룬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나 공짜로 누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게 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IMF, 아빠의 사업이 망했고 우리 가족은 모든 걸 잃었다. 살면서 그런 풍족함을 아예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지금 난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되었지만, 내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만 같고, 난 능력이 없는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이 기분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누렸던 그 풍족함과 지금 내 현실. 그 차이에서 오는 상실감, 자괴감, 좌절 등의 감정이 지금의 우울증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39살이 되어서야 의사 앞에서 울면서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난 왜 그렇게 못할까. 난 왜 돈을 이것밖에 못 벌까. 왜 난......'


매일 밤 자려고 누워서 나를 자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잠이 올 리 만무했고 술을 마시거나 수면제를 먹으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자고 나면 다음 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악순환. 온종일 날 괴롭히고 자책하며 하루하루 버티듯 살았다. 그리고 나에게 그 풍족함을 느끼게 해주었다가 뺏어간 아빠를 또 원망했다. 그렇게 20년을 괴롭게 살아왔다. 내 아이를 낳고 기르며 그 좌절감은 배가 되었다. 난 내 아이에게 부모님처럼 해줄 수 없었다. 내가 누린 것들을 내 아이에게는 해주지 못하는 나를 보며 또 좌절했다. 위를 보면 끝이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릴 때 내가 누렸던 것들을 내 아이에게도 누리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오셨고 많은 걸 이루셨는데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내 아이를 보았다. 내 아이는 풍족하진 않지만, 행복해 보였다.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는 내 아이가 나의 우울한 감정에 동요되지 않길 바라며 웃어보았다. 풍족함 대신 사랑을 주자. 모든 건 나의 감정이고 나의 욕심일 뿐이었다. 

허세와 비교는 버리자. 인정하자. 내가 이룬 것에 대해 부정하지 말자.

다짐하며 오늘도 나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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