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김과장 Jan 09. 2024

05. 나의 연애사

결핍 가득한 연애

내 과거를 어린 시절부터 쭈욱 돌아보다 보니 재밌는 일들이 생각났다. 아니, 재미라기보다는 흑역사라고 해야 할까. 오늘은 가족 얘기 말고 나의 연애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일단 나의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었다. 아빠는 사업 때문에 출장이 잦았고, 난 엄마와 둘이 있는 게 익숙했다. 가끔 보는 아빠가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빠가 집에 와도 두 분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았기에 엄마 눈치를 봤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아빠도 엄마의 눈치를 봤던 것 같다. 어쨌거나, 풍족했을지는 몰라도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건은 아빠의 외도였다. 울며 소리지르던 엄마,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 무관심한 친할머니,친할아버지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어렸을 때인데도 할머니의 쯧쯧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겐 친할머니가 2명이었다. 아마 할머니에게는 별 일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한 이유는 나의 연애사에 나의 가족사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연애는 16살, 중 3때부터 시작되었다. 엄마와 둘이 지내는 생활은 외로웠고, 엄마는 늘 바빴기 때문에 기댈 곳이 없었다. 중 3때의 연애는 풋풋했다. 같이 등하교를 하고 독서실에 가고 가끔의 일탈 정도였을까. 그런데 점점 난 남자친구에게 점점 집착을 하게 되었고 연락이 잠깐만 안 되면 집앞에 찾아가서 기다리는 짓까지 하게 되었다. 잠시만 옆에 없어도 불안했다. 난 그 아이가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남자친구에게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내 집착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싸움이 잦아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별했다. 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도 새로운 연애를 금방 시작했다. 두 번째 연애 역시 시작할 때는 좋았지만, 난 점점 남자친구에게 집착했고 질려버린 그 아이는 결국 이별을 고했다. 세 번째 연애도 역시 똑같은 패턴이었다.


스무살이 넘어서 한 네 번째 연애는 조금 달랐다. 연상이었던 남자친구에게 내 가정사를 이야기했고 남자친구는 고생했다며 나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그리고 내 집착도 다 받아주는 듯 보였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하고, 옆에 있는 친구가 남자가 맞는지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고, 만날 때마다 남자친구의 핸드폰을 뒤졌다. 그리고 그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 비번까지 알아내 남자친구의 주변 여자들과의 관계도 다 끊어버렸다. 그렇게 하면 난 이 사람이 내 옆에만 있을 줄 알았다. 난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돌아보면 집착은 사랑이 아니었다. 


"넌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어."


그랬다. 그 사람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그저 난 내 옆에서 나만 바라볼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여러명과의 연애가 같은 패턴으로 이어졌다.


나의 연애 패턴 : 이별 → 만남 → 집착 → 싸움 → 이별


난 단 하루도 누군가 내 옆에 없으면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애를 쉬지 않고 했다. 


"너 그거 병이야. 정신 병원 가봐."


남자친구에게 저 말을 들은 게 25살때쯤이었던 것 같다. 난 울면서 화를 냈지만, 남자친구는 더이상 내 집착을 받아주지 못하겠다고 이별을 고했다. 그때 갔으면 좋았을 걸, 39살이 되어서야 병원에 가서 내가 병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을 남자친구로 채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집착하는 내 모습이 너무 괴로워서 심리상담센터에 갔었다. 검사 결과는 "유기 불안". 난 누군가에게 또다시 버려지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던 것 같다. 아빠가 날 버렸다고 생각했기에 아마도 나의 불안증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심리상담센터를 다니고 지금 남편을 만났을 때의 난 조금 달라져 있었다. 집착하고 싶지만 참을 줄 알았고 남편은 내 아픔을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딸을 낳고 내 남편을 보니 아빠라는 존재가 딸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해주는 첫 남자이자, 내가 살아가는데 기준이 되는 사람이다.

아빠에게 사랑받고 자란 딸은 연애를 할 때 아빠보다 나를 더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고른다고 한다. 하지만 난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었고 사랑받은 기억이 없었기에 정말 아무나 만났다. 친구들은 늘 남자 보는 눈이 없다고 했지만, 난 내 옆에만 있어주면 그저 좋았다. 기억에 남는 굵직한 연애는 대여섯 번, 짧은 연애도 여러번. 연애를 반복하며 배운 점이 많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이기도 하다. (ㅎㅎㅎ)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굳게 다짐했다. 내 아이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리고 지금 남편에게 너무도 감사하다. 내 아이는 적어도 나처럼 결핍이나 불안을 느끼며 자라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내 과거를 돌아보면 늘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끝이 난다. 모든 게 아빠 때문인 것만 같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싶은데 쉽지 않다.

이제 다시 병원에 다닌지 2달 정도, 일상생활은 많이 안정되었고 우울한 감정도 많이 나아졌다. 오늘은 아빠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04. 우울증의 원인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