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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Jan 23. 2024

07. 편모 가정에서 자란다는 건

죄책감과 책임감, 그리고 부담감

12살, 부모님의 이혼 이후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 모두의 표정이 비슷했다. 미안하다는 표정. 그럼 난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난 정말 괜찮았다. 부모님의 선택이었고 그들의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괜찮았다. 사실 그리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기에 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만약 두 분이 헤어지지 않고 계속 사셨다면 다투는 모습을 보며 더 안 좋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두 분의 성향이 확연히 달랐고 오히려 각자의 삶을 선택한 게 나은 선택이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아빠의 부재는 제법 큰 결핍이었다. 그리고 빚과 함께 남겨진 엄마와 나는 친척집을 전전해야 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하루 아침에 12살의 딸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친척집의 방 한칸에 엄마와 얹혀 살면서 엄마는 일을 구하러 다녔고 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월세지만 우리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 내 방이 생겼다고 기뻐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나에게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웬만한 일에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는 아빠 없이 자라는 나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화도 내지 않고 혼도 내지 않았다. 차라리 둘 다 감정을 쏟아내며 지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힘들다고, 그러지 말라고, 미안하다고, 아프지만 네가 있어 다행이라고. 그런 말들을 하고 들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와 나는 서로 감정을 공유하지 않고 혼자 감정을 삭이는 걸 택했다. 그래서 결국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였고 이제 와서 그 감정들을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내가 철이 들 때쯤 난 엄마를 보며 죄책감을 느꼈다. 아빠가 나를 버리고 간 후 재혼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때도 난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도 내가 없었으면 엄마의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빠와 이혼했을 때만 해도 엄마는 삼십대 후반이었다. 충분히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택했다. 내가 불행해질까봐 엄마의 행복을 포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는 이미 늙어 있었다. 엄마의 청춘을 나에게 다 바치고 엄마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편안한 표정이었다.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우면서도 난 나를 생각했다.


'난 남은 평생 엄마를 책임져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내가 참 나쁘다고 생각했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엄마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어디선가 금수저,은수저,흙수저의 기준을 본적있다.

부모가 내 자식까지 책임질 수 있으면 금수저.

부모가 나까지 책임질 수 있으면 은수저.

내가 부모를 책임져야 하면 흙수저.


이 기준에서 보면 난 흙수저다. 내 인생은 이렇게 살다 끝나겠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엄마를 보았다. 날 책임져야 했던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는 얼마나 버거웠을까. 내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혼자 남아 돈도 없이 사춘기의 딸을 키워낸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는 왜 날 버리지 않았을까. 이제 다 컸다고 늙어버린 엄마를 책임지는 게 무겁다는 나를 보며 또다시 죄책감이 든다. 


"엄마에 대해 말할 때 짠하다, 라는 말을 많이 하시네요."


의사가 내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다. 엄마에 대해 죄책감이 심한 것 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성인이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을 열심히 살아온 이유 중 하나는 엄마였다. 엄마의 잃어버린 20년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난 여전히 아등바등 살고 있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좌절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엄마에 대한 감정은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수없는 감정이 섞여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편모 가정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아온 나는 조금 더 복잡한 감정이다. 엄마의 옆에 아빠가, 아니 누군가가 있다면 나의 이 책임감이 좀 덜어지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또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이런 양가 감정 사이에서 오늘도 내 아이를 돌봐주고 내 저녁을 차려주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저릿하다.


이런 딸이라 미안해, 엄마. 그리고 고마워. 날 지켜줘서, 내 옆에 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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