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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Feb 05. 2024

# 꿈

Dreams come true

이른 아침 눈을 뜨면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향한다. 창문 옆 버튼을 누르면 커튼이 열린다. 거실 한쪽면의 유리통창으로 햇빛에 반짝이는 한강이 보인다. 이번 집은 복층이라 층고가 높다. 이 집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구글, 라디오 켜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주방으로 향한다.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시 거실로 온다.

시간은 오전 7시.

기역자의 커다란 소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소파에 앉아 협탁에 놓여있던 태블릿을 연다. 제일 먼저 메일을 확인한다. 출판사에서 출간 일자가 확정되었다는 메일이 와 있다. 지난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에세이는 여전히 몇 달째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출판사에 미팅 일정을 회신하고 태블릿을 내려놓는다.

5년 전 내가 쓴 소설이 웹툰화가 되고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늘 꿈꿨던 드라마 작가를 하며 여전히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기에 회사를 그만둔 후에는 아이와 여행도 많이 다녔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8시즈음 2층 아이방으로 향한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이는 나의 목소리에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켠다.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딸은 훌쩍 커버렸다. 그래도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아이를 데리고 나올 때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오셨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와서 2층 작업실로 향한다.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방 하나를 내 작업실로 만들었다. 천장까지 빼곡한 책장이 한 면에 가득하고 반대쪽 벽은 세계지도로 도배를 했다. 아이와 벽을 보며 어디를 가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안경을 쓰고 노트북을 켠다. 이번 시나리오는 시놉시스만 보고 계약하자는 곳이 있었다. 소설을 쓰는 게 가장 재미있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재미있다. 내가 쓴 시나리오가 드라마로 만들어져 움직이는 걸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방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온종일 써도 질리지가 않는다. 회사를 어떻게 다녔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잉- 지잉-.


"응."

"또 글 쓰고 있지?"

"그럼. 이게 내 일인데."

"잠깐 나와. 커피나 마시자."


남편의 전화다. 남편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본인이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우리는 요즘 느끼고 있다. 남편과 집 근처 브런치 가게에서 만나 커피와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브런치 가게의 TV에서는 내가 참여한 드라마가 재방송되고 있다.


"다음달에 발리에 가서 한 달 정도 있을까 하는데. 방학이기도 하고."

"그래. 같이 가자."


예전에는 어렵던 일들이 이제는 쉬워졌다.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여전히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엄마는 얼마 전 여행을 보내드렸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에서 한 달간 여행 중이다. 내가 행복해지니 모두가 행복해졌다. 5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일을 하며 우울증 약을 끊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힘들어도 행복한 일이었다. 밤새 글을 써도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행복해?"


남편의 물음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응. 너무."


이 행복이 무너질까 두려울 만큼 난 행복하다. 벌써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잠들 때까지 오롯이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마감이 다가와서 바쁠 때는 남편과 엄마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아이와 매일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오늘은 아이가 가고 싶다던 카페에 갈 생각이다. 내 아이는 나와는 달리 사랑을 듬뿍 받으며 결핍 없이 자라주었다. 모난 곳 없는 아이를 볼 때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며 오늘도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발리에 온 지 2주일째다. 아이는 매일 수영을 하고 나는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엄마는 맨날 노트북만 해."


아이의 볼멘소리에 웃으며 수영장으로 향한다. 아이는 나를 닮아 수영을 좋아한다. 석양을 보며 수영을 하고 있으면 더이상 부러울 게 없는 기분이 든다. 남편은 베드에 누워 어느새 잠이 들었다. 너무도 평온한 나날들이다. 


"다음엔 어디 갈까?"

"제주도!"

"그때 갔었잖아."

"그래도 제주도가 좋아!"

"그래. 그럼 다음엔 예쁜 집 빌려서 제주도에서 지내자."


제주도에 낮은 담벼락이 있는 단층 주택에서 지냈을 때가 아이는 좋았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마감으로 한동안 바쁘겠지만, 이번 시나리오만 탈고하면 당분간 조금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쓰고 싶은 소설들의 소재가 여러 개 쌓여있다. 한국에 가면 인터뷰와 강의 스케줄도 잡혀 있어서 바쁠 것 같아 발리에 있는 동안 아이와 신나게 놀 생각이다. 늘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남편과 엄마, 그리고 아이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남은 생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실컷 쓰며 살고 싶다.




5년 뒤, 나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난 글을 쓴다. 여전히 아프고 현실은 힘들지만 언젠가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 이 글을 보며 미소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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