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의존증
(친구들이 나에게 사달라고 할 정도였으니....)
어쨌든 난 애주가가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술 마시는 날을 세봤는데 연달아 100일은 마셨던 것 같다. 다행히(?) 아빠를 닮아 여자치고 술이 센 편이었고, 소주 2~3병은 기본이었다. 대학교 때 자취를 하면서는 알콜의존이라고 느껴질 만큼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알콜중독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술을 마시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취하지 않고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언젠가 이모부가 술을 왜 그렇게 많이 마시냐고 물었을 때 고작 22살이었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술을 마셔야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었고 나의 상황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20대의 대부분을 술과 함께 보냈다. 회사를 다니면서 몸이 힘들어지고 나이가 들면서 술 마시는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힘이 들면 술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나의 삶은 조금 정상적으로 바뀌어갔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지만,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조금만 빨리 철이 들었으면 좋았을 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었는데 그렇게 시간만 보낸 게 너무 후회스럽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힘들 땐 매운 것과 술을 찾았다. 소주를 한잔 마시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알콜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힘들었기에 술을 마시지 못했지만, 회사에 복직하면서 술을 찾는 횟수가 다시 늘어났다. 그리고 우울증약을 다시 복용하기 전, 나에게 큰 계기가 있었다.
대학교 때 친구와 대낮부터 술을 마시게 되었고 오후 7시쯤엔 이미 만취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집이었고 난 필름이 끊겨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새벽에 잠에서 깬 남편은 화가 잔뜩 나 있었고 아침에 만난 엄마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전해 들었고 정말 위험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취한 상태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고 집앞 계단에 잠들어 있었다고 했었다. 남편이 수십 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잠들어 있는 내 핸드폰을 경비 아저씨가 받아 남편이 데리러 나왔다고 했다. 집에 와서도 변기를 붙잡고 계속 토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는 쓰러져 있는 엄마를 보며 울고불고 했다고 했다.
그날 난 술을 끊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시 우울증약을 먹으며 술을 끊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지 오늘로 120일이 되었다. 120일 동안 술 없이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었다. 물론 퇴근 후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 한잔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120일 전의 그날을 떠올리며 다신 내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조금만 마시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한잔 마시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힘들어. 아예 안 마시는 게 나아."
술을 마시지 않으니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다. '스트레스 → 술 → 숙취 → 후회' 의 굴레에서 벗어나 글을 쓰고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하는 중이다.
곱창에 소주 한잔 하고 싶은 날이지만, 적어도 1년은 끊겠다고 다짐하며 오늘도 글을 써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