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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Feb 19. 2024

12. 나는 관종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김과장

20대 초반 우리에겐 싸이월드가 있었다. 일촌을 맺고 일촌평을 남기고 방명록을 쓰고 사진을 퍼갔다.


"퍼가요~♡"


사진을 퍼가며 남기는 기본 댓글이었다. 투데이 수로 내 싸이월드에 오는 사람들의 통계를 보았고, 가끔 이벤트를 걸어 몰래 훔쳐보는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있었다.

난 그때도 지금도 친구가 많지 않다. 그래서 나의 싸이월드는 조용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난 제법 열심히 다이어리를 쓰고 누군가 봐주길 바랐던 것 같다. 나의 관종력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싸이월드 이후에는 트위터, 페이스북을 거쳤고, 지금은 나 역시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본다. 인스타그램이 처음 유행했을 때 난 온종일 그곳을 들락날락하며 다른 사람들의 피드를 구경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돈이 얼마나 많으면 저런데 사는 걸까.'

'뭐해서 돈을 버는 걸까.'

'애 낳고도 어떻게 저런 몸매를 유지할까.'


인스타그램은 나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만들었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한동안 나는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나 역시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인스타에 올리면 '좋아요'를 받을 법한 사진을 찍고 그럴 듯한 글을 썼다. 그리고 좋아요 수와 팔로워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나의 글이나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는 걸 즐겼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거짓말이지만, 극복 중이다.


그 당시 나는 행복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 '누군가 나를 부러워한다' 에서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말도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상도 못할 곳에 사는 사람들, 말도 안되게 돈을 쓰는 사람들, 연예인보다 예쁜 사람들까지. 단 하나도 내가 이룰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한숨만 쉬는 나를 발견했다.


"넌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


인스타그램만 보고 있는 날 보며 남편이 말했다. 남편은 나에게 '관종', '허세', '속물' 이라는 단어를 썼다. 남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서 더 슬펐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벤츠를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벤츠에서 내릴 때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였으니 남편은 기가 찼을 것이다. 그리고 난 벤츠를 사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은 나에게 결혼할 때 명품백을 사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난 거절했다. 내 능력으로 명품백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몰라도 하나뿐인 명품백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하나뿐인 명품백을 애지중지 들고 다니삶 말고, 벤츠를 타며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명품옷, 가방, 신발이 하나도 없다. 40년 인생에 단 한번도 사본 적이 없다. 에코백을 메고 비닐봉지를 들고 다녀도 모시고 사는 짓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그게 더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벤츠는 왜 이렇게 가지고 싶었을까. 괴로운 고민들을 하던 어느날, 나는 과감히 인스타그램을 삭제해버렸다. 나의 스토리도 모두 삭제해버리고 어플 자체를 지워버렸다. 보지 않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생각하지 않으니 행복해졌다. 아니, 행복해지는 중이다. 행복이라기 보다 현실에 만족하는 법과 나의 현실을 인정하는 중이라고 할까.


물론 지금도 괴롭다.

내가 런칭한 소설들은 리뷰와 평점으로 평가받고 있었고, 악플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브런치 작가에 4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다. 인스타그램은 끊었고, 브런치에 나를 위한 글을 쓰자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이 글이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도 관종스럽다.


얼마전 새해가 되고 신년운세를 봤었다.


"뭘 해도 만족 못하는 사주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벤츠를 사 나는 만족할까? 과연 행복할까? 아마 난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누군가와 비교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니 무얼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일단 브런치의 알람을 껐다. 구독과 라이킷 수에 또 집착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관종인 내가 행복한 순간을 되짚어보고 조금씩 바꾸어보려고 한다.


아직 멀었지만, 나의 행복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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