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증의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결핍 가득한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우울증이라고 처음 느낀 건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나는 결혼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낳는 건 정말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나의 결핍에서 비롯된 우울감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고 대물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5년이 되던 해, 남편에게 물었다.
"아이 갖고 싶지 않아?"
"네가 준비되면."
남편과 시부모님은 나에게 5년 동안 한 번도 아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를 좋아했지만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살아도 된다며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결혼 5년차 여름, 나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처음 생각이 든 이유는 '노산'이었고 두번째는 한 번도 노력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 갖자."
나의 말에 남편은 따라주었지만, 아이는 찾아와주지 않았다. 결국 병원을 다녔고 둘 다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나이와 여러 이유로 바로 시험관 시술을 했다. 그리고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보던 날, 나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시험관 시술에서 한 번에 성공할 확률이 적다고 했는데 정말 로또처럼 아이가 찾아왔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임신 기간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입덧도 심하지 않았고 계속 회사를 다녔고 제왕절개 수술 3일 전까지도 일할 수 있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처음 아이를 본 순간도 믿기지 않았다. 제왕절개는 '낳는다' 보다는 '꺼낸다'에 가까웠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감동적이지도 않았고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라는 현실감도 없었다. 그리고 난 후처치 중 출혈이 많아 수술 시간이 3배 가까이 걸렸다. 수면 마취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도 후처치 중이었고 난 멀쩡한 정신으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너무도 무섭고 두려운 시간이었다. 남편은 그때를 생각하면 간호사들이 피가 가득한 양동이를 들고 나가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둘째를 절대 갖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에게도 두려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회복 기간에도 몸이 좋지 않아 아이를 안을 수 없었고 유리창 밖에서 30초 정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퇴원하던 날, 내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다. 난 아이가 생기면 '모성애'는 당연히 생기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준비되지 않은 나는 서툴렀고 잠도 못 자며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기를 낳고 100일간 매일 울었다. 제일 많이 든 생각은 이거였다.
'내 인생은 끝났어.'
아이가 예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후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지쳐있었다.
"다 하는 건데 뭐 그렇게 유난이야."
"넌 친정 엄마도 같이 계신데 뭐가 힘들어?"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고, 이 상황에서 힘들다고 하면 안될 것만 같았다. 모성애가 없는 엄마인 것만 같아 그 사실도 괴로웠다. 하지만 난 내 삶은 없어졌고,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와중에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남편이 부러웠고 나도 빨리 복직하고 싶었다. 남편은 아무것도 포기한 것 같지 않은데 나는 다 포기한 것 같아서 남편이 미웠다. 그당시 남편도 내 눈치를 보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예민했고 잠도 짦게 잤고 분유도 조금씩 먹어서 자주 먹여야 했다. 초보 엄마인 나는 쩔쩔매며 어쩔 줄 몰랐고 어떨 땐 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내가 왜 아이를 갖는다고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난 모성애가 없는 걸까. 회사에서의 일은 밤새 할 자신이 있었지만, 아이와 온종일 있는 건 힘들었다. 그렇게 어찌저찌 아이의 첫 돌이 지나고 처음으로 정신의학과를 방문했다. 그때부터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내가 밝아지니 가족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지금 나의 아이는 4돌을 앞두고 있다. 아이는 예쁘고 소중하고 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존재가 되었지만, 내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나의 모성애를 의심할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우울하지는 않다. 아이는 이런 엄마에게서도 다행히 밝고 사랑스럽게 자라주었다.
그리고 난 여전히 회사를 다니며, 퇴근한 후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재운 후에는 글을 쓴다.
가끔 늦게 자는 아이를 보며
'할 게 있는데 왜 안 자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모성애가 없는 건가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도전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딸, 미안해. 이런 엄마라서.
그래도 세상 누구보다 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