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하는 생각이 있다.
'다 그러려고 그런 거야.'
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게 이십대 초반즈음이었던 것 같다. 10년 만에 재회한 아빠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을 때 난 말했다.
"아빠가 원망스럽지만, 그때 우리 집이 망했기 때문에 난 이렇게 클 수 있었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
12살 전의 난 가지고 싶은 게 없었다. 내가 말하기 전에 엄마,아빠가 모두 사주셨고 그것들에 감사하지 않았다. 용돈도 나이에 비해 많이 받았고 돈이 부족하면 언제든 부모님이 더 주셨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돈이 늘 많은 편이었고 아껴 쓸 필요도 없었다. 일례로 10살쯤 미국에 한 달 어학연수(?) 같은 걸 갔었는데 내가 막내였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 그 당시 내가 들고 갔던 돈은 200만원이 넘었었다. 언니, 오빠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워했었는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살다보니 아쉬운 게 없었고 아마 성격도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의 관종끼와 허세가 그때도 있었을 테니 얼마나 재수없는 아이였을까 싶다.
집이 망하고 모든 걸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누리던 게 얼마나 감사한 것들이었는지. 아마 집이 망하지 않았더라면 난 계속 그렇게 싸가지 없고 재수없는 아이로 자랐을 거다. 혼자 힘으로 뭘 해보지 않았을 거고 열심히 살 필요도 없었을 수도 있다. 기껏해야 사업가 아빠 밑에서 자라면서, 재벌도 아니고 왜 그랬을까.
어쨌든 난 집이 망하고 부모님이 이혼하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생활력이 강한 아이로 자랐고 혼자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남자에게 기대지 않았으며 신데렐라 같은 건 꿈꾸지도 않았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언젠가 남자, 여자의 할 일을 가르는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난 집의 전구를 갈 줄 알았고, TV나 컴퓨터가 고장나면 내 힘으로 고칠 수 있었다. 엄마와 둘이 살며 집에 남자가 없었지만,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왔다. 난 연애를 하면서 남자가 집에 데려다주는 걸 싫어했다.
"나 혼자 갈 수 있는데 굳이 네가 왜? 왔다갔다 너무 비효율적이잖아. 중간에서 헤어지자."
내 말에 그 당시 남자친구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던 게 기억난다. 한번은 바람을 핀 남자친구에게 이런 말도 들었었다.
"너는 내가 필요한지 모르겠어. 다 네가 알아서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난 내가 필요하다는 여자를 만날 거야."
나의 자립적인 성격이 그 사람에게는 서운할 수도 있나 싶었다. 그게 바람을 핀 이유로 정당한 건 아닐 테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내가 싫지 않았고 생활력이 강하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다 그러려고 그런 거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사업이 망했던 아빠를 탓할 필요도, 이혼한 부모님을 원망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방어기제를 만든 건 아닐까 생각도 하지만 이 생각을 하면 힘든 일도 이해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아, 이렇게 되려고 그때 그랬구나."
"이렇게 강하게 자라려고 그때 그런 거야."
"이 또한 다 그러려고 그런 거겠지."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를 다독이며 생각한다. 다 그러려고 그런 거야.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 하지 말자.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한다. 우울증이 다시 찾아온 게 내가 글을 쓰려고 그런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다.
다 그러려고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