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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Mar 03. 2024

16. 왕따의 기억

중학교 1학년 1학기, 왕따를 당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먼 곳으로 중학교를 가게 되었고 난 오롯이 혼자였다. 반 친구들의 대부분은 같은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이었고 먼 곳에서 온 나를 달갑지 않게 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왕따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를 포함하여 4명이 잘 지내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 중 가장 목소리가 큰 한 명이 나에게 재수없다고 한 것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


"쟤 재수없어."


이유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당시 돌아가며 왕따를 시키는 게 유행이었고 난 그저 제일 먼저 타깃이 되었다. 내 편을 들어줄 친구도 없었고 다른 반에도 아는 친구들이 없었으니 가장 쉬운 상대였던 것 같다. 그리고 1학기 내내 나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음악실에 가고 혼자 다녔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했을 때 그 아이는 또 다른 타깃을 잡아 뚱뚱하다며 놀렸다. 그리고 그 아이가 왕따가 되었다.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던 그 아이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아이를 D라고 부르려고 한다.


"다시 내가 우리 무리에 껴줄게."


아주 인심쓴다는 듯 나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고 원래 내 자리에 있던 아이는 혼자가 되었다. 나 또한 피해자이면서 방관자가 되었다. 


겨우 14살, 나는 한 학기 동안 괴로워서 울며 엄마에게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검정고시를 보면 더 빨리 졸업할 수 있다며 설득해보려 했지만, 엄마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중,고등학교의 사회생활이 중요하다며 나를 다시 학교로 보냈다. 매일 학교에 가는 길이 너무 괴로웠고 죽고 싶었다. 어느 날은 옥상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죽어 버리려고. 왕따를 당하며 맞거나 돈을 뺏기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반 아이들은 내가 들으라는 듯 나의 욕을 했고 내 책상에 낙서를 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도 또렷하다. 그리고 왕따를 주도했던 D의 웃음과 목소리, 이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2학년으로 올라가며 반이 달라지고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후로는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 나의 사회성에도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왕따를 당하고 난 후부터는 가식적으로 웃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별 탈 없이 학교 생활을 했었다. 

 D와는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갔었고, 난 길에서 D를 본적이 있다. 17살의 나는 혼자 걸어가던 D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그때 왜 그랬어?"

"내가 뭘?"


그래.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 내가 한 학기 동안 얼마나 괴로웠고 너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넌 다 잊었구나. 난 그 당시 친했던 친구들과 D의 옆을 지나며 혼자 있는 D를 비웃었다.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었지만, 어깨를 툭 치고 가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그때 그 교실의 공기를 기억한다. 짧다면 짧은 한 학기, 4개월의 기억이 평생 나를 괴롭혔다. 아니, 억울했다. 난 그 이후로도 D와 D에게 동조했던 2명의 소식을 찾아보았다. 너 같이 못된 것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구나. 젠장.


14살의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당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가 당할 때 손을 내밀지 못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다. 힘든 친구가 있으면 다른 누가 무어라 해도 꼭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휩쓸리지 말고 네가 판단한 기준으로 움직이라고.

엄마는 비겁했지만, 엄마가 못한 걸 너는 꼭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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