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에 대한 고찰
내 30대의 기억에는 요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돌이켜보면 어느 시절이든 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30대 초반에 유독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고, 나를 구원할 무언가를 애써 찾았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우연히 등록한 요가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은 묘하게 영적이었다. 눈빛은 나를 꿰뚫는 듯했고, 한마디 한마디가 내 안에서 울림을 일으켰다. 나는 단숨에 매료되어 그분이 진행하는 요가지도자 과정을 등록했다. 운동으로 가볍게 시작했던 요가는 그렇게 내 삶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지도자 과정은 10주간 주말마다 진행되었다. 하루 종일 수련하고, 이론을 공부하고, 실습을 반복했다. 수련을 하다가 참 많이 울었다. 몸으로 찾아온 괴로움과 그간 쌓아둔 마음속 고통 중, 무엇이 날 더 힘들게 하는 건지 혼란스러우면서도, 감정의 찌꺼기가 땀과 눈물로 함께 빠져나가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곳의 요가에서 특히 끌렸던 것은 아사나(요가의 자세)와 삶을 연결하는 지도 방식이었다. 수련 중 마주하는 신체의 감각과 떠오르는 생각, 자세의 의미를 삶과 연결함으로써, 몸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깊어졌다.
요가지도자는 단순히 아사나를 설명하고 따라 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날의 주제에 맞춰 조화로운 시퀀스를 구성하고, 그 흐름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울림 있게 전해야 한다. 수련자 개개인의 몸 상태를 읽어 적절한 가이드를 건네고, 다음 수련에서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느끼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 거기까지가 내가 배운 요가지도자의 역할이었다. 나아가 수련이 깊어지면 요가의 정신에 대해서도 안내해야 한다. 요가는 아사나들의 나열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마음의 수련이기 때문이다.
요가의 원뜻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아사나를 통해서 호흡을 고르게 하고, 바른 호흡으로 생각을 비우며, 고요 속에서 깊은 명상에 도달한다. 그럼으로써 몸과 마음과 영이 하나가 되는 상태, 그것이 요가이며, 'Om'이다. 아사나는 그 상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멋진 자세가 목표가 아니라, 그 너머의 합일이 목적이다.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꾸준히 수련은 못하지만, 여전히 요가는 내 삶의 일부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 호흡과 손끝의 미세한 감각에 집중하면 생각을 비워낼 수 있다. 몸과 마음과 영을 하나로 만들려는 일종의 습관이다. 생각해보면, 요새 즐기는 러닝, 등산, 수영도 호흡에 집중하고 생각을 비우게 해준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결을 지닌다.
그 시절 요가를 배울 수 있었음에 늘 감사한다. 그때의 배움과 깨달음들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고, 힘든 순간마다 삶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 되었다. 지금도 나의 요가는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