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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Dec 23. 2020

슈퍼맨과 원더우먼

그들은 사실 초능력자가 아니었다.

서른이 훌쩍 넘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나이가 들고 있구나' 생각되는 순간들이 문득문득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애잔했던 순간은, 우리 부모님이 사실은 슈퍼맨과 원더우먼이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됐던, 찰나의 순간이었던  같다.


모든 아이에게 그렇듯, 엄마 아빠는 내겐 태어날 때부터 엄마 아빠였고,  세상의 전부였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들이었고, 항상 암묵적인 도움을 청하고  받기만 했던 존재였다. 엄마 아빠만 있으면 무서울  없었고, 그렇게 내게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당연한분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엄마 아빠도 처음부터 엄마 아빠는 아니셨고,  인생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당신들의 인생이 있었으며, 그분들께도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생애 처음 맞는 순간들이었음을 깨달았을 때쯤, 부모님도 당신들의 부모님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았고, 그래서 가끔 실수도 하셨으며, 부모로서의 전지전능함 또한 당연한 것은 아니었음을 찰나의 충격으로 깨닫게   같다.


어느새  나이가 어렸을 때의 내가 기억하던 엄마의 나이를 넘어가고, 부모님의 연세는 아직 낯설기만  숫자가 되어갈수록, 무조건적으로 비비던 부모님이라는 언덕이 사실은 그리 당연하기만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같다. 내가 무언가 물어보는 날들보다 내게 무언가 물어보시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부모님이 겪었을 부모로서의 걱정과 고뇌, 책임감 같은 인간적인 어려움들을 어렴풋이 공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는 영원히 원더우먼과 슈퍼맨일 것이고, 내게도 우리 부모님은 그렇다. 연세와 상관없이 여전히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못하는 것이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그렇다 해도 원더우먼과 슈퍼맨에게도 영웅 이외의 삶이 있다는 것,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한평생 자식 앞에 영웅이셨던, 아니 영웅일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영웅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남은 부분은 자식들의 몫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가는 자식이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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